
종묘 정전의 지붕은 한 칸씩 옆으로 이어 붙인 탓에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박석 마당을 밟으면 발밑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올라오고, 비 갠 뒤에는 젖은 나무와 흙냄새가 낮게 깔린다. 화려한 단청 없이 검붉게 칠한 기둥을 따라 눈을 들면 잿빛 기와의 긴 선, 그리고 그 위로는 하늘뿐이다. 그 하늘이 지금 법정에 올라와 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 건너편 일대의 재개발 계획에 유산영향평가를 이행하라고 명했고, 서울주택도시공사는 그 명령을 다투는 행정소송을 냈다. 공기업이 유산 당국의 이행명령을 소송으로 되받은 국면은 낯설다. 여기서 겨루는 것은 건물 몇 개의 층수가 아닌, 담장 너머 시야를 누가 정할 수 있는가에 가깝다.
유산의 경계는 담장이 끝나는 곳에서 함께 끝나지 않는다. 종묘를 종묘이게 하는 것은 정전이라는 건물만큼이나, 그 건물이 앉은 낮은 지형과 지붕 선 위에 아무것도 얹히지 않은 여백이다. 그 여백을 개발 이익과 맞바꿀 수 있다고 전제하는 순간, 남는 건 담장 안에 갇힌 전시물뿐이다.
반대편 논리도 약하지 않다. 종묘 건너편은 오래 낡은 채 버려져 온 도심이고, 집은 모자라며, 높이를 누르면 사업성은 무너진다. 도시를 통째로 박제로 만들자는 요구냐는 반문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평가를 거치라는 명령은 짓지 말라는 빗장과 다르다. 보존은 시간을 멈춰 세우는 일도 아니다. 유산영향평가는 무엇을 얼마나 올릴지 대신 정해 주지 않고, 경관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미리 재어 보고 남기라는 절차에 가깝다. 그 절차를 건너뛴 채 올라간 벽은 나중에 되돌릴 방법이 없다.

되돌릴 수 없다는 성질이 이 다툼을 여느 행정 분쟁과 갈라놓는다. 잘못 지은 주거단지는 수십 년 뒤 다시 지으면 되지만, 그 수십 년 동안 마당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영영 다른 하늘이다. 세계유산 등재가 알아서 지켜 준다는 믿음도 절반만 맞다.
등재는 받아 둔 상장이 아니다. 계속 지키겠다는 약속에 가깝고, 주변 풍경을 관리하지 못하면 그 약속부터 흔들린다.
공방은 길어질 것이고, 그사이에도 설계는 계속 진행된다. 판결문이 나오기 전에 굳어 버리는 선이 있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는 편이 좋다.
종묘는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다. 담장을 따라 걷다 정전 박석 마당 한가운데 서서 지붕 선 위를 한 번 올려다보면 된다. 거기 열려 있는 하늘의 넓이가 지금 다투는 것의 실물이다. 그 넓이가 몇 해 뒤에도 같은지 기억해 둘 사람이 많을수록, 이 사건의 결말은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