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하루는 대체로 두 가지 노동으로 나뉜다. 그리는 시간, 그리고 그린 것을 지키는 시간. 몇 해 전까지 후자는 도용 신고 정도였다. 요즘은 자기 그림을 인공지능 학습에서 빼달라고 신청하는 절차가 그 목록에 새로 들어왔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내놓은 옵트아웃 가이드는 그 절차의 뼈대를 정리한 문서다. 옵트아웃은 내 데이터를 학습에 쓰지 말라고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는 방식을 뜻한다. 비슷한 시기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정이용, 그러니까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쓸 수 있게 인정하는 예외를 어디까지 볼지 안내서로 정리했다. 창작자 수입이 줄었다는 조사가 그 옆에 나란히 놓였다.
세 가지를 겹쳐 읽으면 논쟁의 축이 바뀐 것이 보인다. 오래 다뤄온 물음은 '혁신을 허용할 것인가 통제할 것인가'였다. 지금 실제로 결정되고 있는 것은 이 기술의 비용을 누가 치르는가다. 그리고 현재 설계는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개인에게 넘긴다.
옵트아웃은 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제에 가깝다. 자기 작업물이 어디에 실렸는지 추적하고, 사업자마다 다른 양식을 찾아 채우고, 처리 결과를 확인하는 일 전부가 창작자 몫이다. 학습이 끝난 모델에서 특정 데이터의 영향만 골라 되돌리는 것도 기술적으로 간단하지 않다. 신청이 받아들여져도 효력은 다음 모델부터라는 뜻이다.
반대편 논리는 만만치 않다. 사전 동의를 원칙으로 세우면 학습 데이터 확보가 사실상 막히고, 그 부담은 자본이 두꺼운 해외 사업자보다 국내 개발자 쪽에 더 크게 걸린다. 데이터를 못 쓰게 한 결과가 국내 창작자에게 돌아온다는 경고도 근거가 있다. 그럼에도 선택지가 사전 동의와 옵트아웃 둘뿐이라는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사후 보상, 협회 단위의 권리 위임, 학습에 쓰인 데이터 범주의 공개 같은 중간 설계가 여럿 존재한다. 이 방식들은 개발을 멈추지 않으면서 부담을 사업자 쪽으로 되돌린다. 공정이용 안내서도 해석의 지침일 뿐 법정에서의 결론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규칙이 흐릿한 채로 분쟁이 붙으면 소송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쪽이 유리해진다.
그래서 지켜볼 것은 안내서의 문장이 실제 계약서로 옮겨가는지다. 플랫폼 이용약관에 학습 이용 조항이 어떤 표현으로 들어가는지, 흩어진 신청 창구가 한곳으로 모이는지가 그 신호다. 이 둘이 움직이지 않으면 가이드는 선언으로 남는다.
기술이 좋아질수록 그리는 시간은 늘어나야 맞다. 지금은 거꾸로다. 학습 제외 신청서를 채우느라 새벽을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 어딘가 잘못 채워진 것이다. 그림 한 장을 올리기 전 약관의 학습 이용 조항을 한 번 읽어두는 일이, 개인이 쥘 수 있는 몇 안 되는 손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