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금융의 적용 지점이 평가 지표에서 실제 대출 창구로 옮겨가고 있다. 산업은행 이사회는 지난주 395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의했고, NH농협은행은 저탄소 설비 개선을 위한 전환여신 첫 사례를 집행했다. 기술보증기금과 농협은행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기반 녹색기업 평가사업 업무협약을 맺은 사실은 지난 28일 알려졌다. 세 건 모두 분류체계를 여신 판정에 직접 쓰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겹친다.
산업은행 증자는 1주당 액면가액 5000원, 신주 7900만주 발행 방식이다. 정부가 지분 100%를 쥐고 있어 신주 발행은 곧 정부의 현금 출자를 뜻한다. 산업은행이 신주를 찍는 것은 2026년 들어 처음이다. 배정처는 재정경제부와 기후대응기금 두 곳이며, 기관별 금액 배분은 확정 공표 전이다.
기후대응기금 출자분은 KDB 탄소 넷제로 프로그램에 쓰인다. 이 프로그램은 기후테크와 수소 인프라(생산·저장·유통·활용), 해상풍력 발전 사업 및 공급망 기업을 대상으로 시설·투자·보증 등에 최대 20년간 우대금리를 적용한다. 기후대응기금은 2022년 설립됐고 2026년 1월 기준 운용 규모 2조9057억원으로 역대 최대다. 올해 초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기획재정부로부터 이 기금의 운용·관리를 넘겨받으면서 기후에너지재정과를 새로 뒀다.
농협은행의 첫 전환여신은 경남 고성군의 축산물 유통기업 부경제일축산물이 받았다. 용도는 폐수처리시설 설치를 포함한 환경개선 투자다. 이 건은 K-택소노미에 비춘 적합성 절차를 거쳐 실행됐다. 지난 24일에는 이동원 농협은행 고성군지부 지부장과 정락경 부경제일축산물유통센터 대표가 기념 촬영을 했다.
기보와 농협은행의 협약은 서울 중구 농협은행 본사에서 체결됐다. 농협은행이 평가를 의뢰하면 기보가 분류체계에 따라 적합성을 검증한 보고서를 넘기고, 이 결과가 녹색여신·전환금융 심사에 반영되는 방식이다. 참석자로는 이재필 기보 이사와 임세빈 농협은행 수석부행장이 확인된다. 기보는 2026년 3월까지 택소노미 기반 신규 보증 3748억원을 공급했다.
금액 지표들은 기준이 서로 달라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 어렵다. 산업은행 3950억원은 이번 출자액, 기보 3748억원은 누적 보증 공급액, 산업은행이 2024년 제시한 154조원은 2030년까지의 투입 목표다. 154조원의 집행 기준과 현재 진척도는 이번에 함께 제시되지 않았다.
확대 흐름과 다른 시각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29일 과거 은행 대출의 80~90%가 기업 대출이었으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는 가계대출 비중이 70%를 넘는다고 짚으며, 녹색금융이 대출 확대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분류 기준을 심사에 붙이는 것과 자금이 실제로 저탄소 설비로 흘러가는 것은 별개 문제라는 취지다.
농협은행은 그룹 전환금융 전략과 묶어 녹색·전환여신을 늘리고 ESG 금융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목표 금액과 시한은 제시하지 않았다. 증자 대금 납입과 신주 발행이 마무리되는 시점, 기보 검증 보고서가 실제 심사에서 몇 건을 통과시키는지가 다음 확인 지점이 된다. 고성군의 폐수처리시설 한 건이 남긴 기록은 분류체계가 서류에서 설비로 이어진 첫 경로라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