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사라지는 직업 0개, 옮겨가는 일자리 68개

미디어·입력 2026. 05. 17. 오전 7:38:00
10년 전망이 가리킨 건 소멸이 아닌 비대칭 재편
일자리는 사라지기보다 다른 쪽으로 옮겨 실린다
일자리는 사라지기보다 다른 쪽으로 옮겨 실린다 / ⓒ 브레스저널

인공지능이 직업을 통째로 없앤다는 공포가 정책 논쟁으로 번지는 동안, 실증 전망은 다른 그림을 내놨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사흘 전 공개한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 사업보고서'에서 2035년까지 고용 규모가 '감소'할 것으로 분류된 직업은 182개 중 단 한 개도 없었다. '현 상태 유지'가 114개로 62.6%를 차지했고, '다소 감소'는 12개(6.6%)에 그쳤다. 3개년으로 추진되는 전망 사업의 첫 결과물이다.

이 보고서는 국내 약 490여개 직업 가운데 205개를 골라낸 뒤, 관리자 직종 23개를 뺀 182개를 놓고 분석했다. 결과는 감소·다소 감소·현 상태 유지·다소 증가·증가 다섯 등급으로 나뉜 것으로 파악된다. 늘어나는 쪽으로 분류된 직업은 '다소 증가' 47개(25.8%)와 '증가' 9개(4.9%)를 합쳐 56개다. 직업이라는 이름표 자체는 대부분 살아남되, 그 안에서 하는 일이 바뀐다는 뜻에 가깝다.

어디가 늘고 어디가 줄어드는지는 꽤 뚜렷하다. 성장 직군으로는 의료·돌봄·생활지원 분야가 지목됐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평균수명 연장, 만성질환 증가, 1인가구 확산 같은 인구 변화가 근거로 제시됐고 전문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유망 직업으로 꼽혔다. 문화·콘텐츠 쪽에서도 만화가·웹툰 작가, 영화·음반 기획자, 여행상품 개발자, 숙박시설 서비스 종사원이 증가 직업군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줄어드는 쪽은 반복·단순 업무가 몰린 사무 직군이다. 출납창구사무원과 은행사무원, 디자인·편집 보조 직무가 감소 압력이 큰 직무로 거론됐다. 반대로 같은 사무직이어도 데이터 분석, 디지털금융·자산관리, 경영기획·마케팅 기획 직무는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사무직이라는 한 덩어리 안에서 살아남는 직무와 밀려나는 직무가 갈리고 있다.

고용정보원이 지난해 4월 낸 별도 보고서는 화이트칼라가 블루칼라보다 AI에 대체될 가능성이 약 5.5% 높다고 봤다. 무엇을 측정한 값인지는 공개된 설명이 짧다. 그럼에도 이번 10년 전망의 결론과 겹쳐 읽으면 가리키는 곳은 같다. 책상에 앉아 하는 업무가 자동화의 사정권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현장의 신호는 전망보다 빠르다. 경기 판교 ICT 밀집 지역에서는 1~3년 차 초급 개발자의 채용 문이 좁아졌고, 국내 IT 기업의 한 임원은 단순 코딩과 번역, 회계 기초 장부 정리 쪽 신규 채용 수요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깃허브 코파일럿 같은 AI 코딩 도구가 주니어 개발자 서너 명분의 단순 작업을 처리한다는 업계 평가도 나온다.

현장 기술직은 인력 부족과 임금 상승이 겹치고 있다
현장 기술직은 인력 부족과 임금 상승이 겹치고 있다 / ⓒ 브레스저널

반대편에서는 배관·전기·건설·설비 기술직의 인력 부족과 임금 상승이 동시에 관측된다. 미국 직업학교 입학률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로 늘었고, 영국 유나이티드 칼리지 그룹에서는 3년간 공학·건설 과정 등록이 약 10% 증가한 반면 학부 등록률은 10년 만에 처음 뒷걸음질했다.

AI 자체가 이 수요를 만들어내는 면도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늘면서 전력 공급과 냉각 설비를 짓고 돌볼 기술 인력이 필요해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AI 공장을 세우려면 엄청난 수의 전기공과 배관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제프리 힌턴 교수도 대체 위험이 가장 낮은 직업으로 배관공을 들었다. 국제노동기구는 2023년 생성형 AI가 직업을 통째로 없애기보다 일부 업무를 자동화해 기존 일자리를 보완할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총량으로 보면 늘어난다는 계산도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25년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일자리 9200만 개가 사라지고 1억7000만 개가 새로 생긴다고 내다봤다. 산출 범위와 대상국은 공개된 요약만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총량이 늘어도 사라지는 9200만 개를 맡고 있던 사람과 새로 생기는 1억7000만 개를 채울 사람이 같지 않다는 점이 이 전환의 난제다.

갈등은 표면으로 올라와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AI·로봇 도입에 따른 고용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며 사측과 부딪히고 있고,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생산라인 투입 가능성도 거론됐다. 같은 로봇을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 27일 전북 군산 새만금컨벤션센터 투자협약식에서 직접 살펴봤다. 산업 육성의 상징과 고용 불안의 상징이 한 기계에 겹쳐 있다.

지난 10일 카네기멜런대 졸업식 연단에 선 63세의 황 CEO는 AI가 여러분을 대체할 가능성은 낮지만 AI를 더 잘 쓰는 사람이 여러분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사선 영상 판독은 AI가 맡아도 환자를 진단하고 돌보는 전문의의 몫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예를 들었다. 향후 2년치 전망 보고서가 더 나오면 어떤 직무가 어느 등급으로 옮겨갔는지 추적이 가능해진다.

그전까지 개인이 확인할 수 있는 건 하나다. 내 하루 업무를 쪼갰을 때 기계에 넘길 수 있는 조각과, 사람이 곁에 있어야 끝나는 조각의 비율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가.

미디어 기자 · Breath.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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