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주에 정반대 결론을 담은 주장이 나란히 나왔다. 벤처캐피털 a16z 일반 파트너 데이비드 조지는 에세이에서 AI가 화이트칼라 인력을 몰아내고 영구 실업 계층을 만든다는 예측을 잘못된 경제학이자 허구라고 반박했다. 반대편에서는 미국 대졸 청년층 고용 지표가 뚜렷하게 나빠지고 있다는 진단이 이어졌다. 두 주장이 보는 대상은 같지 않다.
조지가 겨냥한 것은 '노동량 불변의 오류'다. 세상에 필요한 일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기계가 하나를 가져가면 사람 몫이 하나 줄어든다는 전제를 뜻하는 말인데, 그는 이 전제부터 틀렸다고 봤다. 20세기 초 농업 기계화로 미국 고용의 3분의 1이 사라졌으나 그 인력이 공장과 사무실로 옮겨갔다는 사례가 근거로 제시됐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토스텐 슬록도 제번스의 역설, 즉 기술 비용이 싸질수록 오히려 그 기술을 쓰는 수요가 늘어난다는 논리를 들어 고용 증가 쪽에 섰다.
총량 통계는 이 편을 든다. NBER와 연방준비은행 등의 연구에서 AI 도입 이후 총고용 수치에 유의미한 변화는 확인되지 않았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은 AI 노동 논쟁 참가자들을 경악파·인내파·열광파로 나눴고, a16z를 열광파로 분류했다. AI 투자로 수익을 내는 쪽의 낙관이라는 이해관계도 함께 지적된다.
그런데 총량을 걷어내고 연령대별로 들어가면 그림이 달라진다. 스탠퍼드대 연구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비롯한 'AI 노출 직군' 고용이 13% 줄었다고 봤다. 22~25세 청년층 고용은 6% 감소한 반면 고연령층 고용은 늘었다. 같은 기술이 같은 회사에 들어와도 충격이 특정 연령대에 몰린다는 뜻이다.
미국 22~27세 대졸 실업률은 2022년 4.1%에서 올해 2월 5.6%로 올랐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기준 대졸자 불완전 고용률은 43% 수준이다. 프리랜서 플랫폼 업워크 조사에서는 기업 경영진의 64%가 AI를 이유로 신입 채용을 줄이거나 멈출 계획이라고 답했다. 영국 IPPR 연구소는 AI 확산의 1차 충격이 여성·청년·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높은 엔트리급 사무직에 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취업 준비 현장의 풍경도 바뀌었다. 듀크대를 졸업한 번미 오미소어(22)는 AI 서류 필터를 통과하려고 챗GPT로 핵심 단어를 지원서에 심는다고 했다. 에이먼 모튼(23)은 인턴 지원서를 453번 낸 끝에 유튜브에 들어갔다.
미국 신입 채용 공고에서 AI 활용 능력을 요구하는 비율은 근래 두 배가량 늘었다. 이 변화를 AI가 일으켰는지, 금리 인상기 기술기업 감원 같은 다른 요인이 겹쳐 나타났는지는 갈라내기 어렵다.
대체와 재설계를 나눠 보는 시각도 있다. BCG 보고서 'AI는 일자리를 대체하기보다 재설계한다'는 완전히 사라지는 일자리를 10~15%로, 업무 구성이 다시 짜일 가능성이 높은 일자리를 절반 이상으로 추정했다. 이 추정의 대상 국가와 전망 연도는 공개된 범위 밖이다.
황형준 BCG코리아 대표는 이 논지를 담은 칼럼을 이날 지면에 실었다. 안톤 코리넥 등 경제학자들이 AGI 실현 시 노동 자체가 선택 사항이 되는 상황을 경고한 것도 같은 논쟁의 한 갈래다.
AI가 코딩과 분석의 진입 문턱을 낮춘다는 사실 자체에는 양쪽이 동의한다. 해석만 정반대다. 한쪽은 누구나 개발자가 될 수 있다고 읽고, 다른 한쪽은 그 낮아진 문턱이 원래 신입이 배우며 버티던 일감을 지웠다고 읽는다. 실제로 줄어든 것은 일의 총량보다 초심자가 서툴게 일하며 실력을 쌓을 수 있던 시간이다.
한국 데이터로 같은 그림을 확인하려면 청년 실업률과 신입 공고 수를 함께 놓고 봐야 하는데, 그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달 29일 동국대 서울캠퍼스에서는 기술 이후의 노동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열린다. 이광석 서울과기대 교수, 홍남희 연세대 교수, 박소희 고용노동부 노동기준감독관 등이 발표자로 나선다.
기술이 사람을 대체하느냐는 물음은 너무 크다. 실제로 답이 필요한 것은 스물세 살이 첫 직장에서 3년 치 서툰 일을 하며 배울 기회가 남아 있느냐다. 453번의 지원서는 그 기회의 값이 어디까지 올랐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