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석을 밟으면 마른 돌끼리 맞닿는 소리가 발밑에서 올라온다. 종묘 정전의 기둥에는 단청이 없다. 검붉은 나무와 흰 회벽, 낮게 눌린 기와가 마당 끝까지 길게 이어지고, 비 온 다음 날이면 젖은 흙냄새가 돌 사이에 오래 남는다. 그 위에 얹힌 것은 하늘뿐이다.
이 하늘을 얼마에 셈할 것인가. 종묘를 마주한 도심 재개발을 두고 국가유산청과 서울시가 부딪혔다. 국가유산청이 첫 공식 이행명령을 냈고, 이틀 사이 청장의 유감 표명이 뒤따랐다. 회의실에서 오가던 이견이 문서와 공개 발언으로 옮겨 붙은 것이다.
행정 절차의 승패로 읽으면 이 사안은 대번에 작아진다. 600년 동안 제례가 끊기지 않은 공간의 하늘선을 개발 이익과 맞바꿀 것인가, 도시가 무엇을 재산으로 여기는지 고르는 일이다. 높이는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지 않는다.
종묘의 건축은 위엄을 높이로 만들지 않는다. 낮고 길게 누운 대신 그 위의 빈 공간을 통째로 쓴다. 건물이 한 뼘도 손상되지 않아도 배경이 채워지면 그 경험은 사라진다. 세계유산의 값은 담장 안쪽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대편 논리도 결코 약하지 않다. 종묘 건너편 도심은 오래 낡았고, 그곳에서 살고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보존은 비용을 혼자 떠안으라는 요구로 들린다. 도시 전체를 유리 상자에 넣을 수는 없다는 말은 옳다. 규제가 길어질수록 손해는 특정 지번의 사람들에게만 쌓인다.
그러나 낡은 동네를 되살리는 길이 높이 완화 하나였던 적은 없다. 밀도를 다른 블록으로 옮기고 공공 기여를 다시 짜고 보상 재원을 사회 전체가 나눠 지는 선택지가 남아 있다. 그것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가장 되돌리기 어려운 것부터 내주는 거래는 남는 장사가 될 수 없다. 건물은 다시 지을 수 있고, 하늘선은 그렇지 않다.
충돌이 공개 국면으로 넘어간 지금, 관건은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다. 조정 과정이 열려 있느냐, 완화의 대가로 무엇을 얻는지 시민이 확인할 수 있느냐다. 협의가 비공개로 봉합되면 결론이 어느 쪽이든 도시는 배우는 것 없이 다음 사안을 맞는다.
일요일 아침 외대문을 지나 정전 월대에 서보길 권한다. 담장 위로 열린 하늘이 어디까지 비어 있는지 눈으로 재어두면 된다. 몇 해 뒤 같은 곳에 다시 서서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사이 도시가 무엇을 골랐는지는 설명 없이도 알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