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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 1만 개로 되살린 1902년 궁중잔치

루츠·입력 2026. 04. 28. 오후 4:22:00
국악박물관 순회전 《브릭 진연》, 기록화 속 의례를 놀이의 언어로 옮기다
브릭으로 다시 세운 조선 궁중 무용의 대형
브릭으로 다시 세운 조선 궁중 무용의 대형 / ⓒ 브레스저널

플라스틱 브릭 1만 개가 넘게 쌓여 한 시대의 마지막 잔치를 다시 세웠다.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이 여는 기획전 《브릭 진연: 레고로 쌓은 조선 궁중잔치》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옮겨 다니는 전시로 꾸려졌다. 해체와 이동이 쉬운 모듈형 설계를 택했고, 박물관으로서는 순회에 특화된 첫 프로젝트로 파악된다.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전시가 붙든 시간은 1902년이다. 고종 황제의 기로소 입소와 즉위 40주년을 함께 기린 '임인진연'은 대한제국 황실이 공식적으로 치른 마지막 연회였다. 그해의 음악과 춤은 그림과 문서 안으로 들어가 오래 잠들었다. 종이 위에 고정된 대열을 다시 입체로 일으켜 세우는 일이 이 전시의 출발점이다.

관람 동선은 세 개의 방으로 갈라진다. 첫 방 '춤추는 레고'에서 레고 아티스트 콜린진은 브릭 1만 개 이상을 써서 전통 궁중 무용 다섯 종의 대형과 복식을 디오라마로 옮겼다. 매끄럽고 단단한 플라스틱 표면이 비단의 겹과 소맷자락의 흐름을 대신한다. 손톱만 한 부품 하나가 무용수 한 사람의 어깨가 되고, 그 어깨들이 모여 대열의 기하학을 만든다.

두 번째 방 '새롭게 쌓은 전통'은 관람객의 손을 부른다. 미디어아트 그룹 에브리웨어가 만든 브릭형 타일 조형물이 놓이는데, 완성된 상태로 기다리지 않는다. 관람객이 타일을 하나씩 맞물려 끼워야 비로소 형태가 드러난다. 바탕이 되는 그림은 왕의 뒤편을 지키던 일월오봉도다.

임금의 등 뒤에서 누구도 만질 수 없던 병풍이, 여기서는 관람객이 끼워 넣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 물건이 된다. 권위의 상징을 놀이의 재료로 내려놓는 선택이다. 이 전환은 매끈하지만은 않다. 의례의 엄정함을 덜어낸 뒤 남는 감각을 친밀함으로 볼지 가벼움으로 볼지는 관람객마다 다르게 답할 여지가 있다.

관람객이 타일을 끼워야 일월오봉도가 완성된다
관람객이 타일을 끼워야 일월오봉도가 완성된다 / ⓒ 브레스저널

세 번째 방 '찰나의 순간, 영원의 기록'은 궁중 회화 〈임인진연도병〉으로 관람을 닫는다. 브릭으로 만져본 대형이 다시 그림 속 평면으로 돌아가는 순서다. 조립과 원본을 앞뒤로 붙여 놓은 배치여서, 관람객은 자기가 손으로 익힌 형태를 붓의 필선 위에서 되짚게 된다. 손으로 놀아본 뒤에 기록을 만나도록 짜인 동선이다.

무형유산의 전승은 늘 이 긴장 위에 있다.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유리 너머에 두어야 하고, 다음 세대에게 건너가려면 손에 쥐여야 한다. 브릭이라는 재료는 그 사이를 통과하는 하나의 제안이다. 실물이 아니기에 마음껏 만질 수 있고, 실물이 아니기에 원형과 혼동될 위험도 함께 안는다.

순회 일정은 두 곳이 확정돼 있다. 국립세종도서관 전시는 5월 31일까지 이어지고,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는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그다음 행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브릭이 서로 물리는 소리는 아주 작다. 딸깍, 하는 그 마찰음이 1902년의 북소리와 겹칠 리는 없다. 그럼에도 손끝에 남는 감각은 눈으로만 보고 지나간 그림보다 오래간다. 세종에서든 여의도에서든, 타일 하나를 직접 끼워 넣어 보기를 권한다.

루츠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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