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잔에 물을 붓는 동안

배진경·입력 2026. 01. 25. 오후 1:05:00
김이 창빛을 지나 흩어지는 짧은 사이에
잔이 다 차기를 기다리는 몇 초
잔이 다 차기를 기다리는 몇 초 / 사진 Jahra Tasfia Reza · Pexels

창틀로 흐린 겨울빛이 들어오고, 그 빛을 등진 채 주전자에서 물줄기가 떨어진다. 꽃무늬가 옅게 그려진 흰 잔의 가장자리에 물이 닿으면서 작은 거품이 부풀고, 김이 물줄기를 감아 올라가 창의 밝은 띠를 지난다. 옆에는 빈 잔 하나와 뚜껑 덮인 그릇이 어둑하게 놓여 있다.

이런 장면을 보면 손이 잠깐 멈춘다. 물이 잔의 어디까지 찼는지 보느라 눈의 초점이 한 뼘 안쪽으로 당겨지고, 올라오는 온기에 얼굴이 조금 데워진다. 내려앉은 어깨를 알아차리는 것도 대개 이때다.

서두르던 마음은 이 몇 초를 잘 견디지 못한다. 물이 다 차기도 전에 다음 할 일로 건너가려 하고, 그러면 김이 피어오르는 동안은 없던 시간처럼 지나간다.

차를 우렸다면 입에 대기 전에 김을 세 번쯤 바라봐도 좋겠다. 한 번은 잔 위로 곧게 오를 때, 한 번은 빛을 지날 때, 한 번은 흩어져 사라질 때. 그렇게 세어 보면 어떨까.

같은 세기는 불을 끄고 이불 속에 들어간 뒤로 옮겨 볼 만하다. 어둠 속에서는 잔도 김도 없으니, 대신 들이쉬는 숨이 어디까지 길어지고 내쉬는 숨이 어디쯤에서 끝나는지를 가만히 따라가게 된다. 어느 쪽이 더 긴지 재려 들지 않아도 된다. 길이가 밤마다 다르다는 것만 알아차려도 그 몇 초는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김이 다 사라져도 잔에는 온기가 남아 있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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