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부터 국내 코스피 상장사의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제출 대상이 자산 5000억 원 이상에서 코스피 전체 상장사로 넓어졌다. 자율 공시 항목이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도 의무 공시로 바뀐다. 같은 시기 미국과 일본은 분기보고 의무를 덜어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시 부담과 정보 효용을 어떻게 저울질할 것인지가 제도 설계의 과제로 떠올랐다.
확대 일정은 올해에서 그치지 않는다. 2027년부터는 코스피·코스닥 전체 상장사가 정보보호 공시를 제출해야 하고, 코스피 전체 상장사와 코스닥 대형사는 영문공시를 도입해야 한다. 자기주식 현황 공시 기준은 보유량 5% 이상에서 1% 이상으로 낮아졌고, 공시 횟수도 연 1회에서 연 2회로 늘었다. 2025년 하반기부터는 사업보고서와 반기보고서에 중대재해 항목이 들어갔다.
ESG 공시 도입을 위한 기준은 마련 작업이 진행 중이다. 최종안의 내용과 확정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의무화 대상 범위가 자산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되는지도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렵다.
해외의 흐름은 반대 방향을 향한다. 영국은 2014년, 프랑스와 독일은 2015년에 분기보고서 의무를 없앴다. 일본은 2024년부터 금융상품거래법상 분기보고서 제출 의무를 폐지하고 분기결산단신으로 일원화했다. 미국에서는 2025년 장기주식거래소(LTSE)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분기 보고를 반기 보고로 바꿔 달라고 청원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SEC에 분기공시 개정 검토를 지시했다.
청원의 근거로는 비용이 제시됐다. 분기보고서 한 회를 작성하는 데 10만 달러와 1000시간이 든다는 계산이다. 다만 이 수치의 산정 기준과 대상 기업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자본시장법상 분기보고서 제출 의무를 폐지하고 거래소 공시규정상 잠정실적공시 제도를 활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됐으나, 정책으로 확정된 사항은 아니다.
의무화를 앞둔 시점의 실제 이행 수준은 업종별로 갈린다. ESG행복경제연구소가 시가총액 250대 기업 가운데 제약·바이오 업종 32개사를 대상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24년 11월 말 기준 발간 보고서를 토대로 한 거래소 공시율은 33.3%였다. 이중 중대성 평가 수행률은 54.5%로 집계됐다. 보고서를 공시한 기업 중에서도 클래시스와 녹십자 2개사는 이중 중대성 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다.
같은 업종에서 휴젤·펩트론 외 13개사는 보고서를 발간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분석 대상 업종 가운데 미발간 규모가 가장 컸다. 의무 공시로 전환되는 항목이 현장에서 이미 정착한 관행인지, 새로 만들어야 할 절차인지에 따라 기업이 감당할 실무 부담의 크기도 달라진다.

국제 기준도 범위를 넓히고 있다. GRI는 2026년 1월 26일(현지시각) 1분기 표준 설정 활동을 담은 업데이트를 발표했다. GRI 101 생물다양성 표준과 GRI 14 광업 섹터 표준은 2026년 1월 1일부로 발효돼 적용 대상 기업이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 부패·공정경쟁·공공정책 및 로비 활동 관련 3개 경제 기준 개정안은 4월 10일까지, 강제노동·아동노동·결사의 자유 등 노동 분야 기준 개정안은 3월 9일까지 공개 의견 수렴이 진행된다.
글로벌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GSSB)는 2026~2028년 표준 설정 우선순위를 담은 초안 작업계획을 공개했다. 노동·경제 영향·오염 기준 마무리, 섹터 표준 확대, 신규 디지털화 표준 착수가 담겼다. 섹터 표준 사용자를 위한 콘텐츠 인덱스 템플릿도 새로 나왔고, 2024~2025년 개정된 생물다양성·기후변화·에너지 토픽 표준은 기존 섹터 표준 전반에 반영됐다.
공시 항목이 늘면 기업의 내부 관리 체계도 함께 바뀐다. EU 지속가능성 보고 표준(ESRS)은 내부 탄소 가격(ICP)의 활용 여부와 의사결정 반영 방식을 공시 항목에 포함한다. SK 주식회사는 데이터센터 신축 같은 장기 프로젝트의 투자 타당성 검토에 ICP를 적용해 온실가스 배출 잠재 비용을 산정하고 이를 투자·사업 판단에 반영한다. 네이버는 임직원 업무 기기 선택에까지 ICP를 적용해 제품별 환경 영향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025년 국내외 ESG 보고서 트렌드를 분석한 더와이 주식회사는 지난 1월 31일 게재한 글에서 공시·관리 요구사항 확대로 기업의 예산과 인력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국내 상장사가 실제로 얼마를 쓰는지에 대한 금액·시간 추정치는 제시된 바 없다. 미국 청원서에 담긴 것과 같은 계산이 국내 논의에서는 아직 비교 대상으로 등장하지 않은 상태다.
당장 눈앞의 일정은 정해져 있다. GRI 노동 기준 의견 수렴은 3월 9일, 경제 기준은 4월 10일에 닫힌다. 국내에서는 2027년 정보보호 공시와 영문공시 도입이 대기 중이고, ESG 공시 기준의 최종안은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보고 의무를 늘리는 쪽과 줄이는 쪽 모두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투자자가 실제로 읽고 쓰는 정보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