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시가 오는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예비평가 신청서를 낸다. 대상은 경무대와 임시중앙청, 부산항 제1부두, 재한유엔기념공원, 아미동 비석마을, 우암동 소막마을, 영도대교, 복병산 배수지 등 11개 구성유산이다. 2023년 잠정목록에 오르고 지난해 국가유산청 우선등재목록에 뽑힌 뒤 밟는 다음 절차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26일 답사 팸투어를, 27일 부산 벡스코에서 D-50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일정을 설명했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7월 19일부터 29일까지 부산에서 열린다. 한국이 의장국을 맡는다.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뒤 38년 만의 첫 개최다. 등재 심사가 이뤄지는 그 회의장이, 등재를 준비하는 도시 안에 놓이는 셈이 됐다.
피란수도라는 말은 1023일이라는 기간으로 요약된다. 인구 30만 규모였던 항구도시가 100만에 가까운 피란민을 받아 안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쟁에 전투·의료·물자로 참여한 나라는 63개국으로 파악된다. 부산시는 이 유산을 전쟁의 흔적이 아닌 인류애와 국제 연대의 관점에서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 관점이 가장 또렷하게 만져지는 곳이 재한유엔기념공원이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유엔군 묘지로,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가 조성했고 같은 해 4월부터 개성·인천·대전·대구·밀양·마산 등지에 가매장돼 있던 유해를 옮겨 왔다. 잔디는 계절마다 색을 바꾸고, 낮은 동판 명패는 손끝에 서늘하다. 여기 묻힌 이들의 국적을 세는 일과 63개국을 세는 일은 같은 계산이다.
아미동 비석마을은 결이 다르다.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피란민이 집을 올린 곳이고, 축대와 계단에는 화강암 표면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람이 지금도 살고 있는 동네라는 점이 이 유산의 성격을 규정한다. 우암동 소막마을도 마찬가지여서, 가축을 두던 건물이 사람의 거처가 된 내력이 벽 안쪽에 접혀 있다.

보존과 생활은 여기서 충돌한다. 세계유산 등재는 완충구역과 관리계획을 요구하고, 그 요구는 골목에 사는 사람의 창틀과 지붕에 곧장 닿는다. 관광객이 늘면 축대는 닳고, 사진에 찍히는 삶은 전시물에 가까워진다. 이 긴장을 봉합하지 않고 관리계획에 어떻게 적는지가 심사의 관건이 될 공산이 크다.
절차는 길다. 예비평가는 유네스코 자문기구 ICOMOS의 서면심사로 진행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쯤 걸린다. 정식 등재 목표는 2030년으로, 당초 세웠던 2028년에서 조정됐다. 국내 잠정목록 14건 가운데 우선등재목록에 든 것은 양주 회암사지 유적과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두 건뿐이다.
7월 회의 기간 벡스코에는 대한민국관이 선다. 20일부터 29일까지 열흘간 운영되며 축구장 두 배 남짓한 넓이에 6개 중앙부처와 14개 지자체, 13개 민간기관 등 33개 기관이 참여한다. 한국의 세계유산 17건과 세계기록유산 20건을 소개하고, 전통기술 보유자 14명이 손을 놀리는 시연과 무형유산 보유단체 21개 팀의 공연이 이어진다.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196개국 대표단을 포함해 3000명 안팎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된다.
회의는 손님을 부르지만 유산은 그대로 남는다. 대한민국관이 문을 닫은 뒤에도 아미동의 축대와 우암동의 벽, 영도대교의 이음매는 부산 사람의 일상에 붙어 있다. 등재가 결정되는 2030년까지 남은 4년은 그 일상을 어떻게 지켜낼지 궁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연중 무료로 개방된다. 아미동 비석마을과 우암동 소막마을은 지도 앱에 이름을 넣으면 나오고, 원도심에서 버스로 닿는 거리다. 등재 신청서가 유럽으로 건너가기 전에, 축대 아래 남은 돌의 결을 한 번 만져 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