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의 황금이 유럽으로 건너갔다. 국립경주박물관과 프랑스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이 공동으로 마련한 특별전 '신라, 황금과 신성: 신라 고대 왕국 보물(서기전 57년~서기 935년)'이 파리 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관객을 맞고 있다. 유럽에서 신라만을 단독으로 조명하는 첫 전시이자, 해외에서 열린 신라 전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는 것이 주최 측 설명이다. 일반 공개에 앞서 현지시간 18일과 19일에는 VIP 개막식과 언론공개회가 열렸다.
전시품은 148건 333점으로 파악된다. 그 안에 국보 9건과 보물 10건이 들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국보 금관총 금관과 금허리띠, 황금 보검, 그리고 로만글라스와 불상·조각품이 걸음을 이끈다.
금관은 얇게 두드려 편 금판을 오려 세운 물건이다. 나뭇가지와 사슴뿔을 닮은 세움장식에 곡옥과 달개가 매달려, 사람이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서로 부딪히며 잔물결 같은 소리를 냈을 것이다. 경주의 흙 속에서 천오백 년 가까이 눌려 있던 금빛이 이역의 조명 아래 흔들린다. 파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전시에서 가장 먼 길을 돌아온 물건은 종이다. 신라 승려 혜초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이 함께 공개됐다. 두루마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정치·문화·경제와 풍습을 적어 내려간 이 기록은 한국인이 쓴 최초의 해외 여행기로 소개된다.
한국 관객이 이 두루마리를 직접 본 것은 2010년에서 2011년 사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였다. 그 한 번을 빼면, 혜초의 글은 줄곧 파리에 있었다. 여덟 세기에 서역을 걸어간 신라인의 기록이 지금 파리에서 신라의 금관 곁에 놓였다는 것- 이 배치 자체가 하나의 문장이다.

전시 구성은 신라의 건국에서 삼국 통일과 멸망까지 약 천 년을 따라간다. 마지막 구간에는 석굴암을 재현한 공간을 뒀다. 금과 유리와 돌을 차례로 지난 관객이 마지막에 만나는 것이 부처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이 동선은 왕국의 연대기라기보다 한 신앙의 여정에 가깝다.
유물이 국경을 넘을 때마다 같은 긴장이 따라붙는다. 종이와 금박은 빛과 습도에 약하고, 이동은 그 자체로 손상의 위험을 늘린다. 그럼에도 옮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경주의 진열장 안에서 신라는 한국사의 한 왕조이지만, 파리의 진열장 안에서 신라는 로만글라스와 황금 보검을 통해 유라시아 교역망의 동쪽 끝으로 읽힌다. 물건이 놓이는 곳이 바뀌면 해석도 함께 바뀐다.
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 관장은 이번 전시를 두고 고대 신라 왕국의 역사를 발견할 기회라고 말했다. 발견이라는 말에는 보는 쪽의 무지가 전제돼 있고, 동시에 보여주는 쪽의 기대도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전시는 8월 말까지 이어진다. 여름의 파리에서 이 두 개의 진열장, 금관 하나와 두루마리 하나를 나란히 볼 기회는 흔치 않다. 국립도서관에 있던 종이가 경주에서 온 금과 같은 방 안에 놓인 시간은 이 계절이 끝나면 닫힌다. 파리 16구의 그 건물 앞을 지날 일이 있다면, 계단을 올라 특별전시실 쪽으로 한 번 걸음을 틀어 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