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방청과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소방공무원 정신건강 증진과 심리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소방청은 4월 10일 이 사실을 알리며, 대원들이 찾아갈 수 있는 '마음건강 협력병원'을 기존 98개소에서 253개소로 늘려 지정한다고 밝혔다. 협약식은 하루 전인 9일 오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의실에서 열렸고, 김승룡 소방청장과 최준호 학회 이사장이 협약서에 서명한 것으로 파악된다. 학회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약 4500명을 두고 있다.
협력병원이 두 배 반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진료를 받으려면 근무지에서 몇 시간을 달려야 했던 대원의 하루가 조금 짧아진다는 뜻이다. 그동안 소방관의 트라우마는 대체로 개인이 감당해왔다. 동료에게 말하지 않고, 병원 기록이 남는 것을 꺼리고, 다음 출동벨이 울리면 그대로 다시 나가는 방식이었다.
지난해 소방청이 실시한 마음건강 실태조사에서 소방공무원이 최근 1년간 외상 사건에 노출된 횟수는 평균 5.8회로 나타났다. 1년에 여섯 번 가까이, 사람이 다치거나 숨지는 장면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이야기다. 이 조사의 세부 설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평균값 자체가 이 직업의 일상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추세는 완만하게, 그러나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소방청이 지난해 국회에 낸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 사이 소방공무원 설문조사에서 PTSD 위험군 비율은 5.6%에서 7.2%로 올랐다. 같은 기간 우울 위험군은 4.6%에서 6.5%로, 자살 위험군은 4.9%에서 5.2%로 각각 늘었다. 열네 명 중 한 명꼴이 외상 후 스트레스의 위험 구간에 들어와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번 협약에는 병원 확대 말고도 몇 가지가 더 담겼다. 두 기관은 외부 전문가 자문단 인력풀을 만들어 소방청의 보건안전 정책과 사업 전반에 정신의학적 자문을 제공하기로 했다. 소방청은 재난 현장에 투입된 대원에게 필요한 경우 전문 심리지원을 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내놨다. 학회가 벌이는 대국민 정신건강 증진 사업과 연구 지원에는 소방청이 협력하는 방식이다.
이번 협약은 이른바 '소방관 PTSD' 논란이 불거진 지 8개월 만에 나온 응답으로 알려졌다. 8개월은 짧지 않은 시간이고, 그 사이에도 출동은 매일 있었다. 제도가 대원들이 겪는 시간을 따라잡지 못하면 그 대가는 늘 현장이 치른다.
고위험 직군의 정신건강을 국가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소방에만 걸린 문제가 아니다. 항공안전법은 항공사가 매년 조종사를 대상으로 직무 스트레스 관리와 정신건강 상담·평가를 포함한 건강증진활동 계획을 세워 시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항공사들은 실제 운영을 각 사 자율에 맡기고 있고, 이를 하나로 묶어 관리하는 국가 체계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3월 알려진 전 에어부산 부기장 김동환(49)의 피해망상에 따른 동료 기장 살해·살인미수 사건이 조종사 정신건강 관리 실태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 계기가 됐다.
항공사별로 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전 직원 마음 건강검진과 별도로 조종사 직군에 항공전문의가 참여하는 개인별 심층 평가와 상담을 지원한다. 제주항공은 조종사를 대상으로 MBSR 프로그램을, 이스타항공과 티웨이항공은 별도 상담을 운영한다. 에어부산과 진에어는 조종사와 비조종 직군을 나누지 않고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같은 고위험 직군인데도 받을 수 있는 돌봄의 두께가 회사마다 다르다.
협력병원이 253곳이 된다고 해서 대원들이 곧바로 진료실 문을 열지는 않는다. 진료 기록이 인사나 업무 배치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비용은 누가 대는지에 대한 안내는 협약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문턱을 낮추는 일과 문을 열게 하는 일은 다른 작업이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 하나는 분명하다. 대원이 스스로 병원을 수소문하던 일을 이제 소방청과 전문의 단체가 함께 떠맡기로 했다는 점이다. 확대 지정이 실제로 완료되는 시점과 지역별 배치는 다음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 그때 확인해야 할 것은 몇 곳이 지정됐느냐보다 지난해 5.8회를 견딘 대원 중 몇 명이 실제로 그 문을 열었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