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AI 정책이 사흘 사이에 정반대 두 방향으로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1일(현지시간) 예정됐던 AI·사이버 보안 행정명령 서명을 하지 않고 미뤘고, 같은 날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AI로 인한 대규모 일자리 대체에 대응하는 노동정책 개편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연방은 규제의 브레이크를 풀었고, 주정부는 고용 안전망을 손보기 시작했다. 한 나라 안에서 AI를 다루는 두 개의 정부가 서로 다른 시계를 보고 있는 셈이 됐다.
연기된 행정명령 초안의 핵심은 '사전 접근권'이었다. AI 개발업체가 새 모델을 공개하기 90일 전에 정부와 은행 등 핵심 인프라 업체에 모델을 시험해볼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강제가 아닌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설계됐다. 최첨단 모델에 대한 정부의 의무 승인·검증 절차는 담기지 않고, 기존 사이버 보안 정보공유 프로그램에 AI 기업을 끼워 넣는 쪽으로 정리돼 있던 것으로 파악된다.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과학기술보좌관, 국가사이버국장 등이 한 달 동안 AI 기업 의견을 들으며 준비한 문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을 미룬 이유로 행정명령의 특정 측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중국 등 경쟁국에 대한 미국의 우위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점을 취재진에게 밝혔다. 서명식은 주요 AI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백악관에 모이는 행사로 준비돼 있었다. 기업인들이 워싱턴에 초청된 상태에서 행사 직전에 일정이 접혔다.
백악관 안의 대립선은 뚜렷했다. 보안·안보 라인은 강력한 모델이 세상에 나오기 전 검증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봤고, 친기업·실리콘밸리 진영은 그런 절차 자체가 개발을 늦춘다며 반대했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보수 진영 활동가 에이미 크레머 등은 공개 전 정부의 의무 검증을 요구해왔다.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 행정명령이 중국과의 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해진다. 논의의 배경에는 앤트로픽의 AI 시스템 '미토스'를 둘러싼 사이버 보안 우려가 깔려 있었다.
캘리포니아가 움직인 배경에는 실제 감원이 있다. 메타는 AI 전환과 투자 확대를 이유로 전체 인력의 10%인 8천 명을 줄였고, 시스코는 4천 명을 내보냈으며 아마존도 수천 명 규모를 감축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는 지난해 5월 향후 5년 안에 화이트칼라 초급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용 통계가 이 변화를 잡아내기 전에 해고 통지부터 도착하고 있다.

뉴섬 주지사의 행정명령은 대응 수단을 여러 줄기로 벌려놨다. 기존 직원을 AI로 대체하지 않고 유지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연구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마케팅·영업 담당자를 겨냥한 직업훈련을 넓힌다. 해고 대신 근무시간을 줄이고 임금 감소분 일부를 실업급여로 메우는 '워크 셰어' 확대, 실업보험 급여 확충, 퇴직금·주식 보상 같은 성과 분배 확대, 노동자 소유 기업 확대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주 거주민에게 주식·채권·국부펀드 지분 형태로 기본 자산을 나눠주는 방안까지 들어갔다.
기한도 붙었다. 주정부는 90일 안에 실업보험 데이터를 활용해 AI가 산업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하는 대시보드를 만들고, 180일 안에 AI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를 위한 안전망 정책을 정리해야 한다. 뉴섬 주지사는 캘리포니아가 미래가 다가오는 것을 앉아서 지켜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일하는 방식과 사람들을 미래에 대비시키는 방식까지 시스템 전체를 다시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예산 규모와 재원은 확정되지 않았다.
주 의회는 더 세게 나갔다. 행정명령 이틀 전인 5월 19일 캘리포니아 상원은 AI나 자동화 결정 시스템만을 근거로 직원을 해고하거나 징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노 로보 보시스법'을 찬성 29표, 반대 9표로 통과시켰다. 사람의 최종 확인 없이 알고리즘이 인사 결정을 끝내지 못하게 막는 내용으로, 하원 심의가 남아 있다. 뉴섬 주지사는 지난해 비슷한 취지의 법안에는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양쪽이 던지는 해법의 성격도 갈린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 4월 연방정부가 수표를 발행해 보편적 고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AI발 실업의 최선의 대처라고 적었다. 현금을 나눠주는 사후 보상이고, 캘리포니아가 꺼낸 워크 셰어와 재훈련은 일자리 자체를 붙잡아두려는 시도다. 소득을 채워줄 것인지 노동을 유지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논쟁선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달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총격이 발생했고 그 직전 화염병 투척 시도가 있었으며, 오픈AI와 xAI 사무실 앞에서는 수백 명 규모의 반AI 시위가 이어졌다. 대통령은 2025년 1월 전임 정부의 AI 행정명령을 폐기한 뒤 안전 중심 정책을 되돌려왔고, 이번 연기로 그 기조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AI 개발의 문턱을 정하는 일은 연방이 손을 놓고 주가 붙잡는 형태로 흘러가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대시보드가 90일 뒤 문을 열면, 어느 업종에서 사람이 몇 명씩 빠져나갔는지가 처음으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온다. 그때부터 AI 고용 논쟁은 전망 대신 실적으로 다투게 된다. 워싱턴에서 서명이 미뤄지는 동안 새크라멘토는 시계를 돌리기 시작했고, 두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점점 벌어지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