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온 마가(MAGA) 진영 인사 60여명이 백악관에 서한을 보내 강력한 AI 모델의 출시 전 검사·평가·검증과 정부 승인을 의무화하라고 요구했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보수 진영 반(反)AI 활동가 에이미 크레머, 브렌던 스타인하우저가 이름을 올렸다. 이 사실은 5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 보도로 알려졌다. 규제 완화를 밀어온 진영의 핵심 지지층이 정반대 요구를 들고 나온 이야기다.
서한은 생물학 무기 설계, 핵심 인프라 침투, 금융시장 조작을 도울 수 있는 AI 시스템은 그 위험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다뤄야 한다고 못 박았다. AI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선출되지 않은 엘리트'로 부르며, 안전장치도 책임도 없이 대중을 상대로 실험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명자들은 이런 요구가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보여준 리더십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그동안 규제를 최소화하고 주(州) 정부 차원의 AI 법안을 무력화하는 쪽으로 산업 육성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지난 5월 4일, 행정부가 새 AI 모델 공개 전 정부 사전 검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전 검토란 기업이 모델을 내놓기 전에 정부가 위험 요소를 들여다보는 절차를 말한다. 연방 차원의 라이선스 체계로까지 옮겨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배경에는 기술 자체의 성능이 있다.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이 지난달 내놓은 새 모델은 소프트웨어의 보안 허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워낙 뛰어나, 대규모 사이버 공격에 쓰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회사가 이 모델의 일반 공개를 접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확정된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성능이 오를수록 통제 장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함께 커지는 흐름이다.
여론도 같은 쪽을 가리킨다. 지난주 나온 애넌버그 공공정책센터 조사에서 미국인 3분의 2가 정부의 AI 규제가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답한 것으로 파악된다. AI에 희망보다 두려움을 더 느낀다는 응답이 40%포인트 차이로 앞선 조사도 있었다. 미국인 10명 중 7명은 자기 동네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데 반대한다.
기업 쪽 셈법도 바뀌고 있다. 오픈AI는 초당적 법안인 아동 온라인 안전법(KOSA)과 함께 일리노이주 SB 315를 지지했다. SB 315는 최전선급 AI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에 안전 체계 구축, 연간 감사, 중대 사고 보고, 내부고발자 보호를 요구하는 법안이다. 규제를 피하는 대신 규제 설계에 참여하겠다는 계산이 읽힌다.
같은 주 중국에서도 신호가 나왔다. 국무원의 2026년 입법 작업 계획에 'AI 거버넌스 개선과 건전한 발전을 위한 종합 입법 가속화'가 명시된 것으로 파악된다. 데이터, 컴퓨팅 파워, 알고리즘, 저작권, 사이버 보안, 공급망 보호를 대상으로 열거했는데, 당국이 이렇게 분야를 하나씩 적은 것은 처음이다. 2025년 계획이 'AI 개발을 위한 입법 촉진' 한 줄에 그쳤던 것과 견주면 결이 다르고, 전국인민대표대회는 3년째 AI 법안을 핵심 검토 대상으로 올려두고 있다.
법을 만드는 나라가 경쟁에서 밀린다는 전제는 여기서 힘을 잃는다. 중국 업체들은 AI 영상 생성 분야에서 미국 경쟁사와의 간격을 오히려 벌리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주 중국 방문 이후, 두 나라가 통제 장치를 각자 설계하는 국면이 뚜렷해졌다. 제정 시한이나 절차 단계는 확정되지 않았다.
한국의 AI 논의는 오랫동안 '규제하면 뒤처진다'는 문장 하나에 묶여 있었다. 그 문장이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동시에 반증되는 장면을 지금 보고 있다. 우리가 쓰는 챗봇이 어떤 검증을 거쳐 손에 들어왔는지, 옆 동네 데이터센터가 무슨 기준으로 허가됐는지 - 이런 것들이 대답 가능한 물음이 될 때 기술은 비로소 생활의 일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