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9일(현지시각) EU 회원국과 유럽의회 의원들이 AI법 완화를 논의한 협상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논의는 12시간 동안 이어졌다. EU 이사회 순환 의장국인 키프로스 측 관계자는 유럽의회와 접점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협상은 다음 달 재개될 예정으로, 2주 뒤 열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번 논의는 EU 집행위원회가 추진해온 '디지털 옴니버스' 패키지의 한 갈래다. 여러 디지털 규제를 한 묶음으로 손보는 작업으로, AI법과 함께 개인정보보호 규정인 GDPR, 데이터법 정비도 담겨 있다. 2024년 발효된 AI법은 세계 여러 나라가 자국 규정을 짤 때 참고해온 기준선 역할을 해왔다. 그 기준선 자체를 다시 깎는 작업이 중간에 멈춰 선 것이다.
걸린 지점은 하나였다. 제품 안전 규제처럼 업종별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 분야를 AI법 적용 대상에서 빼줄 것인지가 쟁점이 됐고, 유럽의회는 면제를 요구했으나 EU 이사회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범용 AI 모델, 그러니까 하나의 모델을 여러 용도에 갖다 쓰는 대형 모델에 대한 투명성 의무를 얼마나 덜어줄지도 함께 다뤄졌다. 나머지 조항에서는 양측 견해가 상당히 좁혀졌는데, 이 한 갈래가 전체를 잡아 세웠다.
완화를 밀어붙인 쪽의 논리는 이중 부담이다. 독일을 비롯한 일부 회원국과 의원들은 AI법과 업종별 기존 규제를 동시에 지키려면 준수 비용이 불어나고 제품 출시가 늦어진다고 주장해왔다. 비용이 얼마나 늘고 출시가 얼마나 밀리는지를 보여주는 계산은 제시되지 않았다. 반대 진영에서는 네덜란드 의원 킴 반 스파렌탁이 빅테크는 샴페인을 터뜨리고 안전 대응을 마쳐둔 유럽 기업들은 규제 혼란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짚은 부분이 이번 사안의 실질적 손실에 가깝다. 규제가 세든 느슨하든 내용이 확정돼 있으면 기업은 그에 맞춰 인력과 예산을 배치할 수 있다. 반면 규정이 바뀔지 모르는 상태가 몇 달씩 이어지면 어떤 준비도 매몰될 위험을 안는다. 고위험 판정을 대비해 감사 체계와 문서화 인력을 미리 갖춘 기업일수록 타격이 크다.
당장 눈에 걸리는 일정은 고위험 AI 규정이다. 생체인식, 의료, 신용평가처럼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영역의 AI에 사전 심사를 요구하는 조항으로, 올해 8월 적용이 예정돼 있었으나 유지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 협상이 다음 달로 넘어가면 적용 시점까지 남는 준비 기간은 두세 달이다. 규정이 그대로 갈 경우 그 안에 체계를 세워야 하고, 완화될 경우 들인 비용의 일부는 회수되지 않는다.
국내 기업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유럽에 AI 제품을 내보내거나 유럽 고객사의 시스템에 모델을 얹는 곳이라면 계약서의 준수 조항이 어느 버전의 AI법을 가리키는지부터 다시 봐야 한다. 두 줄기 시나리오를 놓고 공통으로 필요한 항목-학습 데이터 이력, 모델 성능 기록, 사람이 개입하는 검토 절차-부터 채워두는 편이 낭비가 적다. 이 항목들은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요구된다.
협상 테이블은 다음 달 다시 열린다. 그 사이 유럽의 개발팀들은 법 조항의 개정 이력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규제를 만드는 쪽의 며칠이 만드는 쪽의 몇 달로 번진다는 점을 EU가 얼마나 감안하고 있는지는, 다음 회의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