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 감당해야 할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가 2026년 들어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여러 관할의 규제로 갈라지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 공시 규정은 철회된 반면, 캘리포니아주 공시 규제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받아들인 국가들의 제도는 이행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단일 기준을 한 번 맞추면 되는 구조가 아니라, 사업을 하는 지역마다 다른 요구를 각각 충족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 한국회계기준원이 2026년 1월 중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확정해 발표하기로 한 시점과 겹친다.
규제 분절의 축 하나는 미국 주(州) 단위에 있다. 캘리포니아 기후공시법 SB253은 연 매출 10억달러(약 1조3800억원)를 넘는 기업을 대상으로 Scope 1·2 배출량 공시를 먼저 요구하고, 이후 단계에서 Scope 3까지 넓히도록 설계됐다. 첫 보고 시점으로는 2026년 8월 10일이 제시돼 있으나, 보고 방식과 세부 일정은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가 만드는 시행규정을 통해 확정되는 구조다. 그 시행규정의 확정 시점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같은 주의 또 다른 법인 SB261은 상태가 다르다. 이 법은 기후 관련 재무리스크 보고 대상을 연 매출 5억달러(약 6900억원) 초과 기업으로 잡고 있으며, 첫 보고 예정일은 2026년 1월 1일이었다. 그러나 미 제9순회항소법원이 2025년 11월 18일 예비금지명령을 내리면서 집행이 잠정 정지됐다. 예정일이 이미 지났음에도 실제 의무 이행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적용 범위는 본사 소재지를 기준으로 그어지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서 매출이 발생하는 기업이라면 미국 밖에 본사를 둔 경우에도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SB253 기준 미준수에는 연간 최대 50만달러의 벌금이 규정돼 있다.
ISSB 쪽 축에서는 시간표가 더 촘촘하다. 영국은 2026 회계연도부터 ISSB 기준에 기반한 영국 지속가능성 공시기준(UK SRS)을 의무화할 예정이고, 호주는 2025~2026년에 걸쳐 대형 상장사와 금융기관을 시작으로 단계 도입에 들어간다. 캐나다도 2026년부터 상장사를 중심으로 ISSB에 정렬된 자국 기준(CSSB)을 적용할 계획이다. 유럽에서는 옴니버스 논의를 배경으로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과 공급망실사지침(CS3D)에 조정 압력이 가해지고 있으나, 조정의 확정 여부와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비용이 실제 수치로 나타나는 영역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2023년 10월 전환기간에 들어간 이 제도는 그동안 수입품 내재배출량 보고만 요구해왔지만, 2026년부터는 인증서 구매 의무가 더해진다.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 대상 품목을 EU로 들여오는 수입업체는 EU 배출권거래제(ETS) 가격에 연동된 인증서를 사야 한다. 보고 항목이었던 배출량이 결제 항목으로 바뀌는 셈이다.
공시 품질에 대한 요구도 함께 올라가 있다. OECD 집계로는 2024년 기준 시가총액 상위 상장사 가운데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시한 기업의 81%가 제3자 보증을 받았다. 자체 산정 수치를 그대로 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 검증을 거치는 방식이 다수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의미다. 다만 이 통계의 조사 대상 기업 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국내 일정은 세 갈래로 움직인다. 한국회계기준원의 공시기준 확정 발표가 1월 중으로 예고돼 있고, 국회도 같은 달 ESG 공시 도입 관련 법안 발의를 예고했다. 반면 금융위원회의 로드맵 발표는 기준 확정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로드맵 공개를 촉구한 바 있다.
기업 입장에서 관할별로 다른 기준선은 그 자체가 대응 비용이다. 배출량 산정 범위, 보고 시점, 검증 수준이 지역마다 어긋나면 하나의 데이터로 여러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 어려워진다. 캘리포니아 매출이 있는 기업, EU로 철강·알루미늄을 내보내는 기업, 영국·호주·캐나다에 상장 계열사를 둔 기업은 서로 다른 시간표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확인이 필요한 날짜는 정리돼 있다. 1월 중 예정된 국내 공시기준 확정, CARB 시행규정에 달린 2026년 8월 10일 보고 기한, 그리고 제9순회항소법원 결정 이후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SB261의 일정이다. 세 가지가 각각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기업이 올해 준비해야 할 보고서의 개수와 마감이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