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대신 물건을 사는 구조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이 질문에 각자의 답을 내놓은 발표가 이번 주 초 사흘 사이에 세 건 나왔다. 구글은 미국소매업협회(NRF) 행사에서 개방형 전자상거래 표준 '유니버설 커머스 프로토콜(UCP)'을 내놨고, 네이버는 1분기 출시 예정인 쇼핑 에이전트를 공개했으며, 앤트로픽은 비개발자용 PC 에이전트 '코워크'를 열었다.
발표 형식은 제각각이지만 셋 다 같은 지점을 건드린다.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 실행할 때 그 권한을 어떻게 증명하고 누가 책임지느냐다.
UCP는 쇼피파이·에트시·웨이페어·타깃·월마트 같은 유통 기업들과 함께 만들어졌다. 애드옌,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베스트바이,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비자 등 20곳 넘는 파트너가 지지를 밝힌 것으로 파악된다. 구글은 이 규격을 오픈소스로 풀었다. 표준을 독점하는 대신 널리 깔리게 해서 기준점을 잡겠다는 선택이다.
기술적으로 UCP는 홀로 서 있지 않다. 지난 2025년 9월 구글이 발표한 결제 프로토콜 AP2와 맞물려 돌아가고, 에이전트끼리 대화하는 규격인 A2A, 모델이 외부 도구·데이터에 접근하는 규격인 MCP와도 호환된다. 핵심은 AP2의 '위임장(Mandate)'이다. 변조 방지 기능을 갖춘 암호화 서명 계약서로, 사용자가 무엇을 시켰는지에 대한 증거를 남기고 에이전트가 보여준 상품·가격이 판매자의 실제 정보와 어긋나지 않도록 붙잡아 둔다.
UCP의 결제 승인도 같은 원리다. 모든 승인은 사용자 동의에 기반한 암호화 증명으로 처리되고, 결제사는 모듈식 처리기를 붙여 쓸 수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기업이 이 표준을 써도 자기 비즈니스 로직을 직접 관리하고 판매자로서의 책임을 그대로 진다는 조건이다. 플랫폼이 거래를 삼키지 않겠다는 선을 표준 문서에 새겨 넣은 셈이다.
적용 계획도 나왔다. 미국 소매업체는 앞으로 구글 검색의 AI 모드와 제미나이 앱 화면에 상품과 서비스를 올리고, 검색을 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제까지 마치도록 할 수 있다. 결제는 구글 페이가 맡고 배송 정보는 구글 월렛에서 가져오며 페이팔은 나중에 붙는다.
다만 언제부터인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구글은 이와 별개로 검색 결과에 브랜드 전용 AI 비즈니스 에이전트를 넣었고, 리복·로우스·마이클스·포시마크가 이를 쓰고 있다.
비슷한 시도는 이미 여럿이다. 오픈AI는 스트라이프·쇼피파이와 손잡고 챗GPT 안에서 상품을 찾고 결제까지 잇는 ACP를 만들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파일럿 대화창에서 곧바로 결제하는 '코파일럿 체크아웃'을 쇼피파이·에트시 경로로 내놨다. 규격 이름은 다르지만 겨루는 대상은 같다.
어느 회사의 문법으로 상거래가 기록되느냐다. 다만 이 규격들이 서로 어디까지 맞물리고 어디서 충돌하는지에 대한 정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네이버가 같은 날 내놓은 답은 방향이 조금 다르다. 자율형 AI 전략 '에이전트N'을 검색·쇼핑·웹툰·지도에 적용하고, 1분기에 쇼핑 에이전트를 낸다. 예산을 정해 장보기를 맡기면 재료 목록을 짜고 가격을 비교해 장바구니 구성을 제안한 뒤 결제 이후 사후 서비스까지 이어간다.
여기에 결제·예약·게시물 삭제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작업에는 사용자 확인 단계를 반드시 끼워 넣고 최종 승인권을 사람에게 남겼으며, AI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근거를 공개하는 원칙을 문서로 못 박았다. 소상공인용 '에이전트N 포 비즈니스'도 함께 붙는다.
앤트로픽의 코워크는 위험을 감추지 않는 쪽을 택했다. 2024년 11월 명령줄 도구로 시작해 2025년 10월 웹, 두 달 뒤 슬랙으로 넓혀 온 클로드 코드를 개발자 아닌 사람 앞으로 끌어낸 도구다. 데스크톱 앱에 들어가 지정된 폴더의 파일을 읽고 고치고 만들며, 크롬 연동으로 브라우저와 외부 앱 정보까지 다룬다.
회사는 사용자 개입 없이 연속 작업하도록 설계한 탓에 지시가 모호하거나 서로 어긋날 때 파일이 지워지거나 프롬프트 인젝션, 즉 외부 문서에 숨은 문장이 명령처럼 읽히는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스스로 적었다. 현재는 연구 미리보기 단계로 최상위 요금제 구독자만 쓸 수 있다.
세 발표를 겹쳐 놓으면 승부처가 어디로 옮겨갔는지가 보인다. 모델이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사용자의 의도를 어떤 형식으로 증명하고 실행 권한을 어디서 끊고 사고가 났을 때 누가 무는가다. 구글은 암호화 증명으로, 네이버는 사람의 확인 단계로, 앤트로픽은 위험 고지로 각기 다른 지점에 빗장을 걸었다. 정작 오배송이나 잘못된 구매가 실제로 벌어졌을 때 판매자·플랫폼·결제사가 어떻게 나눠 책임지는지에 대한 규정은 아직 어느 쪽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당분간 이 기술이 바꾸는 것은 장바구니를 채우는 시간이다. 값을 비교하고 창을 옮겨 다니며 카드 번호를 넣던 십수 분이 문장 하나로 줄어든다. 대신 사용자는 새로운 습관을 하나 얻게 된다.
에이전트가 무엇을 왜 골랐는지 확인하고 결제 직전에 한 번 멈춰 세우는 습관이다. 올해 1분기, 네이버 쇼핑 에이전트가 그 멈춤 단계를 실제로 어떻게 구현해 내놓는지가 이 방식이 생활에 자리 잡을지를 가르는 첫 시험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