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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못한 밤, 몸이 보내는 회복의 신호

입력 2025. 11. 19. 오후 8:10:00

3개월 이상 이어진 불면증, 뇌가 보내는 각성 신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109만 9천명에 달한다. 2018년 85만 5천명에서 5년 사이 28.5% 증가한 수치다. 60대가 전체 환자의 23%로 가장 많지만,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증가세가 뚜렷하다.

불면증은 일시적인 잠 못 드는 밤과 다르다.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는 증상, 새벽에 일찍 깨거나 깊이 자지 못해 아침에도 피로가 지속되는 상태가 3개월 이상 반복되고 낮 동안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불면증으로 본다.

단순히 수면 시간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뇌의 각성 시스템이 과활성화된 상태로, 교감신경계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몸이 지속적인 긴장 상태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이어지면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 장기적으로는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동반되기 쉬우며, 면역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교감신경계의 과활성화는 고혈압, 당뇨, 심혈관 질환과도 연결된다. 수면 부족이 단순히 피로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 전반의 항상성을 무너뜨리는 이유다.

미국수면학회와 국내 수면 관련 학회들이 공통적으로 권고하는 불면증 치료의 우선 순위는 인지행동치료다. 인지행동치료는 잘못된 수면 습관과 수면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 부정적 신념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011년 한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지행동치료를 받은 집단은 불면증 심각도 점수와 침상에서 깨어 있는 시간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2010년 만성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치료 후 수면 효율이 51%에서 92%로 개선되었고,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60.2분에서 10.6분으로 단축되었다.

2020년 연구에서는 뇌파 측정을 통해 치료 후 고주파 대역의 파워가 감소하여 각성 상태가 완화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인지행동치료는 수면위생 교육, 수면 제한, 자극 조절, 이완 훈련, 인지 치료 등으로 구성된다. 수면위생 교육은 규칙적인 기상과 취침 시간을 유지하고, 카페인과 알코올 섭취를 제한하며, 자기 전 스마트폰과 TV 사용을 줄이는 것을 포함한다.

수면 제한은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실제 수면 시간에 맞춰 조정하여 수면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자극 조절은 침대를 오직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재정의하여 침대-수면의 조건화를 강화한다.

여러 연구에서 6~8주 정도의 치료 기간 동안 주 1~2회 세션을 진행했을 때 효과가 나타났으며, 치료 종료 후에도 효과가 지속되었다. 2018년 공존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치료 1개월 후 추적조사에서도 불면증 심각도, 수면 효율, 우울, 불안, 삶의 질 등이 개선된 상태를 유지했다.

수면위생 관리는 인지행동치료와 함께 또는 독립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주말에도 평일과 비슷한 시간을 유지하면 생체리듬이 안정된다.

카페인은 오후 2시 이후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카페인의 반감기는 약 5~6시간으로, 저녁에 마신 커피가 밤늦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알코올은 일시적으로 잠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중간에 자주 깨게 만든다.

자기 전 1~2시간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TV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 노출을 줄이는 시간으로 설정한다. 블루라이트는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여 수면을 방해한다. 대신 책을 읽거나 가벼운 스트레칭,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등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활동이 도움이 된다.

침실 온도는 18~20도 정도로 시원하게 유지하고, 어둡고 조용한 환경을 만든다. 소음이 신경 쓰인다면 백색소음이나 자연의 소리를 활용할 수 있다. 침대는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만 사용하고, 침대에서 일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은 피한다.

불면증 환자들은 잠에 대한 불안과 집착이 오히려 수면을 방해하는 역설적 상황을 경험한다. 잠을 자야 한다는 압박감, 시계를 자꾸 확인하는 행동, 잠들지 못할까 봐 미리 걱정하는 마음이 각성을 더욱 강화한다.

마음챙김 명상은 이러한 불안과 집착을 내려놓는 데 효과적이다.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고 현재 순간에 머물며, 떠오르는 생각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는 훈련을 통해 과각성 상태를 완화할 수 있다. 주 2회 정도 규칙적으로 명상 시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되며, 잠자리에 들기 전 10~15분 정도 간단한 호흡 명상을 하는 것도 좋다.

한의학에서는 불면증을 고민형, 놀람형, 열감형, 소화장애형 등으로 나누어 접근한다. 침, 한약, 뜸 등의 치료를 통해 신체적 불균형을 조정하고, 왕뜸이나 족욕 같은 전통 보조요법을 병행하기도 한다.

20년간 수면제를 복용해온 환자가 침 치료와 명상을 병행하여 2개월 만에 수면제 복용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수면 효율을 개선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불면증은 뇌가 보내는 신호다.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는, 몸이 회복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 3개월 이상 수면 문제가 지속되거나 낮 동안 피로감이 일상을 방해한다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약물에만 의존하기보다 인지행동치료와 생활습관 교정을 우선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들은 일관되게 보여준다. 잘못된 수면 습관을 교정하고, 수면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를 내려놓으며, 몸의 리듬을 되찾는 과정이 약물보다 더 지속 가능한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6~8주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 동안 몸은 다시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운다.

잠은 의지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몸이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다.

규칙적인 리듬, 이완된 마음, 수면을 위한 공간. 이 작은 변화들이 쌓여 다시 깊이 잠드는 밤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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