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2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정신건강 장애를 겪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같은 달 25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인 UN 비전염성 질환 및 정신건강 증진 고위급 회의를 앞두고 전 세계 정책 입안자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World Mental Health Today'와 'Mental Health Atlas 2024' 두 편으로 구성된 이 보고서의 핵심은 충격적인 숫자 하나로 요약된다.
"전 세계 10억 명 이상." 이는 지구상 인구 8명 중 1명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정신건강 장애를 겪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침묵의 팬데믹'은 코로나19가 남긴 상흔, 지정학적 불안, 기후 위기,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가속화와 맞물려 인류의 가장 시급한 보건 위기로 떠올랐다.
브레스저널은 이 보고서를 통해 현대인이 직면한 내면의 위기, 그 원인,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0억'이라는 숫자에 가려진 질적 위기
WHO 보고서는 불안 장애와 우울 장애가 남녀 모두에게 가장 흔한 정신건강 장애임을 밝혔다. 특히 팬데믹 첫해에만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과 불안 장애 발병률이 25% 이상 급증했으며, 그 여파는 2025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위기는 특정 집단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용한다. 유니세프가 2025년 6월 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소셜 이노베이션 서밋에서 발표한 'Z세대 글로벌 정신건강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는 지정학적 갈등, 기후 및 생태 위기, 경제적 불확실성과 정신건강 문제가 결합되어 압도당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5,600명 이상의 14-25세 Z세대를 대상으로 한 이 조사는 10명 중 6명이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에 압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2025년 6월 25일 발표된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 아카데미(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의 '정신·정서·행동 장애 예방을 위한 국가 인프라 청사진' 보고서는 미국에서 인종 및 민족 간 건강 격차의 경제적 비용이 2018년 기준 4,210억 달러에서 4,510억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보고서는 저소득층, 농촌 지역, 소수 인종 커뮤니티가 정신질환에 특히 취약함을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2021년 한 해에만 약 72만 7천 명이 자살로 생명을 잃었으며, 자살은 모든 국가와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젊은이들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는 정신건강 문제가 단순한 '기분'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위기의 근원, 만성적 투자 부족과 구조적 실패
그렇다면 왜 이토록 거대한 위기가 방치되었는가? WHO 사무총장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박사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변화시키는 것은 가장 시급한 공중보건 과제 중 하나"라며 "정신건강에 투자하는 것은 사람과 공동체, 경제에 투자하는 것으로, 어떤 국가도 무시할 수 없는 투자"라고 강조했다.
WHO는 두 가지 구조적 실패를 핵심 원인으로 지적한다.
첫째는 '만성적인 투자 부족'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건강에 대한 정부 지출의 중앙값은 전체 보건 예산의 2%에 불과하며, 이는 2017년 이후 변화가 없다. 팬데믹 이후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재정 투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국가 간 격차도 극명하다. 고소득 국가는 1인당 최대 65달러를 정신건강에 지출하는 반면, 저소득 국가는 0.04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생명을 구하는 데 필수적인 서비스 접근성을 치명적으로 떨어뜨린다.
둘째는 '서비스의 불평등과 사회적 낙인'이다. 정신건강 종사자 수의 전 세계 중앙값은 인구 10만 명당 13명에 불과하며,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에서는 극심한 부족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정신건강 서비스는 부유층이나 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수백만 명이 사는 농촌 지역이나 저소득 국가에서는 기본적인 상담조차 '사치'로 여겨진다.
또한, 정신질환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낙인(stigma)은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를 가로막고, 문제를 더욱 음지화시킨다. 유니세프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10명 중 4명은 여전히 학교와 직장에서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낙인을 느낀다.
가속화되는 위기, '디지털 피로'와 '기후 불안'
구조적 문제에 더해, 현대 사회의 특수성은 위기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2024년 9월 WHO 유럽 지역사무소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청소년의 10명 중 1명 이상(11%)이 문제적 소셜미디어 행동의 징후를 보였으며, 사용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했다.
젊은이들의 3분의 1 이상(36%)이 온라인에서 친구들과 지속적인 연락을 유지한다고 보고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의 연구에 따르면, 과도한 소셜미디어 사용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울증과 불안 증상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AI 알고리즘이 쏟아내는 정보 과부하, 끊임없는 알림, 소셜미디어상의 비교 압력은 '인지적 피로(cognitive fatigue)'와 불안을 일상화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기반 마음챙김 앱이나 스트레스 모니터링 기기가 등장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디지털 환경의 압박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동시에 '기후 불안(Climate Anxiety)'은 Z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신건강 위협 요인으로 부상했다. 유니세프 보고서는 Z세대가 기후 및 생태 위기를 포함한 글로벌 이슈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만, 이러한 지속적인 노출이 정신건강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끊임없는 재난 뉴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게 만들고 무력감을 심화시킨다.
경제적 영향, 생산성 손실의 무게
정신건강 장애의 경제적 영향은 엄청나다. 의료 비용도 상당하지만, 특히 생산성 손실로 인한 간접 비용이 훨씬 더 크다. 전 세계적으로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연간 1조 달러에 달한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심리사회적 위험은 직원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2022년 EU 근로자의 약 27%가 스트레스, 우울증 또는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의회가 발표한 '2024 세계 정신건강의 날' 보고서에 따르면, EU에서는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약 8,400만 명(6명 중 1명)이 정신건강 문제의 영향을 받았으며, 2023년 국가 건강 프로필에 보고된 바와 같이 그 수치는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

WHO의 제언, "병원이 아닌, 커뮤니티로"
WHO는 이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촉구한다.
핵심은 '탈(脫)병원, 지역사회 중심(Community-based care)'으로의 전환이다. 거대 정신병원에 격리하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학교, 직장, 그리고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접근 가능한 '커뮤니티 기반, 인간 중심 케어'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10% 미만의 국가만이 완전히 지역사회 기반 케어 모델로 전환했으며, 대부분의 국가는 여전히 전환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WHO는 다음과 같은 4가지 핵심 조치를 제안한다.
1. 공평한 재정 지원: 정신건강 예산을 대폭 늘리고,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우선적으로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2. 법률 및 정책 개혁: 권리 기반 정신건강 법안을 채택하거나 시행한 국가가 줄어들었으며, 평가 대상 국가 중 45%만이 국제 인권 기준을 완전히 준수하는 법률을 보유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법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3. 인력에 대한 투자: 정신건강 전문 인력(상담사, 사회복지사 등)을 대대적으로 양성하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4. 예방 중심의 접근: 문제가 발생한 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관리, 회복탄력성 교육 등 '예방' 중심의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2025년 UN 회의, 행동의 분수령
이 보고서들은 2025년 9월 25일 뉴욕에서 열릴 UN 비전염성 질환 및 정신건강 증진 고위급 회의에 앞서 국가 전략을 알리고 글로벌 대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도구 역할을 한다.
유니세프 글로벌 정신건강 리드인 자이나브 히자지는 보고서 서문에서 "정신건강은 더 이상 글로벌 혼란의 부작용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가 대응하고, 회복하고, 미래를 재구상하는 방식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9월 25일 UN 고위급 회의는 이 권고안들이 단순한 선언을 넘어, 각국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 가늠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10억 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우리 자신의 고통받는 내면을 의미한다. 인류는 지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브레스저널이 주목하는 '내면의 호흡'은 이제 개인의 몫이 아닌, 전 지구적 차원의 공공 정책과 사회적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 되었다. 침묵을 깨고, 서로의 호흡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참고 자료]
WHO. (2025). World Mental Health Today & Mental Health Atlas 2024
UNICEF Global Coalition for Youth Mental Health. (2025). Understanding the Mental Health Impact of Global Challenges on Gen Z
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 (2025). Blueprint for a National Prevention Infrastructure for Mental, Emotional, and Behavioral Disorders
European Parliament. (2024). World Mental Health Day 2024: 10 Octob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