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빠른 검색을 위해 입력해보세요
⌘K 빠른 열기 Enter 검색 ESC 닫기

'있을 곳'이 사라진 시대, 70대가 20대 넘어선 한국의 과제

입력 2025. 10. 22. 오후 3:30:00

인구 역전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일본 노인 ⓒ unsplash Kazuo otaka
일본 노인 ⓒ unsplash Kazuo otaka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한국의 70대 이상 인구는 654만 명으로 20대 인구 630만 명을 앞질렀다. 1925년 통계 집계 이후 100년 만에 처음 일어난 역전이다.

2020년 703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20대 인구는 4년 연속 감소하며 한때 성인 인구 중 최대 연령대에서 최소 연령대로 전락했다.

이 숫자는 단순한 인구 통계를 넘어선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2025년 현재 65세 이상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약 19.5%다. 국제연합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곧 그 문턱을 넘는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노년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고령화는 여전히 부양 부담이나 복지 위기의 프레임으로만 논의된다. 노인은 돌봄의 대상이고, 청년은 그 부담을 짊어져야 할 세대로 그려진다.

그러나 일본 이와테현 작은 해안 마을 오푸나토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재난 속에서 탄생한 '있을 자리'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 동북부를 강타했다. 오푸나토는 쓰나미로 도시 전체가 파괴됐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들은 임시 주택에 흩어졌고, 특히 노인들은 깊은 고립에 빠졌다.

그로부터 몇 달 후, 한 노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니라 일할 곳이다."

이 한마디가 이바쇼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이바쇼는 일본어로 자신이 자기답게 있을 수 있는 곳을 뜻한다. 노인들이 스스로 설계하고, 건설하고, 운영하는 공간이다.

2013년 문을 연 오푸나토의 허니웰 이바쇼 하우스는 카페, 국수 가게, 텃밭을 갖춘 복합 공간이 됐다. 이곳에서 70대, 80대 노인들은 요리를 만들어 팔고, 아이들을 돌보고, 젊은이들에게 전통 요리법을 가르친다.

미국 건축학자이자 노년학 연구자인 에미 키요타 박사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복지 시설이 아니었다. 노인을 수혜자가 아닌 창조자로, 피보호자가 아닌 공동체의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사회적 실험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정기적으로 이바쇼를 방문하는 노인들은 더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소속감과 자기효능감이 크게 향상됐다. 단순히 외로움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가 회복됐다.

재난 회복 모델에서 글로벌 운동으로

오푸나토에서 시작된 이바쇼는 이제 세계적인 모델이 됐다.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입은 필리핀 오르목, 2015년 대지진 이후 네팔 마타티르타 등 재난 지역에서 이바쇼 모델이 성공적으로 적용됐다.

연구 결과, 필리핀과 네팔의 이바쇼 프로젝트는 참여 노인들의 사회적 자본을 크게 강화했으며, 특히 필리핀에서는 깊은 유대관계가, 네팔에서는 넓은 사회적 연결망이 형성됐다.

가장 주목할 만한 확산은 2024년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싱가포르에서 3월, 이바쇼의 첫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인구보건센터와 사회복지기관 페이스액츠가 협력해 만든 마가렛 드라이브 센터는 이바쇼 8원칙을 싱가포르 맥락에 적용한 사례다.

24명의 다세대 핵심 위원회가 구성됐고, 디지털 클리닉과 업사이클링 공예 워크숍 등 주민 주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노인 고립과 연령차별 문제에 대응하는 동시에, 지역사회 주도 모델이 싱가포르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와 유엔 해비타트도 이바쇼를 주목하며, 고령화 사회의 대안적 모델로 평가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이바쇼는 일본, 필리핀, 네팔, 싱가포르에서 운영 중이며, 세계 각국에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재난 복구 프로젝트로 시작된 이바쇼가 글로벌 고령화 위기에 대응하는 회복 모델로 진화한 것이다.

한국의 고립,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은 어떤가.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은 32.8%로 2020년 대비 13.0%포인트 증가했다. 2023년 혼자 사는 고령자 가구는 213만 8천 가구로, 이 중 18.7%는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고립은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 중 20대가 19만 4천 명으로 가장 많았다. 한국은 이제 청년과 노년 모두 고립된 사회가 됐다.

이러한 고립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다. 2023년 전국 고독사 통계에 따르면, 홀로 사망한 뒤 방치된 사례는 3,661명에 달했다.

이 중 60대가 1,146명, 50대가 1,097명으로 중장년 남성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50대 이하도 43%였다. 한국 사회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홀로 죽어가는 구조를 방치하고 있다.

돌봄이 아니라 역할이 필요하다

이바쇼 모델의 핵심은 이바쇼 8원칙으로 요약된다. 이 원칙들은 노년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전환한다.

원칙 1: 노년층은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축적된 지혜와 기술, 그리고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공동체의 핵심 자원이다.

원칙 4: 모든 세대의 참여. 이바쇼는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아이들은 노인에게 전통 놀이를 배우고, 청년은 노인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준다. 세대 간 순환이 일어나는 곳이다.

원칙 7: 지속가능성. 많은 이바쇼는 공동 텃밭과 직판장을 운영한다. 음식, 사회적 연결, 경제 활동이 하나의 순환 구조를 이룬다.

에미 키요타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인들은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게 아닙니다. 일하러, 기여하러, 가르치러 옵니다. 그 과정에서 외로움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이바쇼의 접근은 한국의 전통적 가치와도 공명한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경험과 지혜를 전수하고, 갈등을 중재하고, 젊은 세대를 이끄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와 핵가족화는 이러한 역할을 해체했다. 이바쇼는 그 역할을 현대적 형태로 복원하는 시도다.

한국에서 이바쇼는 가능한가

한국에도 유사한 시도들이 있다. 서울시는 2023년부터 세대공감 거점공간을 조성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노인이 운영하는 마을 카페와 공동 텃밭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여전히 하향식 복지 프로그램의 형태를 띤다. 노인들이 직접 설계하고 소유하는 구조는 드물다.

이바쇼 모델이 한국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노년을 바라보는 언어를 바꿔야 한다. 노인 복지에서 노년 자산으로, 돌봄 대상에서 공동체 창조자로. 정책 문서와 언론 보도의 프레임부터 달라져야 한다.

둘째, 공간의 소유권을 노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바쇼의 핵심은 이들이 주인이라는 점이다. 지자체나 사회복지기관이 관리하는 공간이 아니라, 노인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운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세대 간 순환을 설계해야 한다. 노인만 모이는 경로당이 아니라, 아이와 청년이 함께 드나드는 공간. 노인은 요리와 전통 기술을 가르치고, 청년은 디지털 도구를 알려주는 상호 학습의 장이 돼야 한다.

회복은 역할에서 시작된다

70대가 20대를 넘어선 시대는 위기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을 뿐이다. 고령화를 부담으로만 바라보는 한, 노인도 청년도 불행해진다.

그러나 노년을 자산으로, 세대 간 순환의 중심으로 재배치한다면, 고령사회는 새로운 공동체 모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바쇼는 완벽한 해법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사람은 돌봄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역할과 목적이 있을 때, 그래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느낄 때, 비로소 다시 살아난다.

한국에는 654만 명의 70대 이상 인구가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건강하고, 일하고 싶어 하며, 기여할 곳을 찾고 있다. 질문은 간단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있을 자리를 마련할 준비가 됐는가.


출처

  • 국가데이터처,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2025)

  • 행정안전부, 「2023년 주민등록 인구통계」 (2024)

  • 보건복지부, 「2023년 노인실태조사」 (2023)

  • 통계청, 「2024 고령자통계」 (2024)

  • 보건복지부,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 (2024)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우울증 진료 현황」 (2022)

  • Ibasho Network, "The Ibasho Approach: Empowering Elders to Rebuild Communities" (2023)

  • Kiyota, E., "Ibasho: Creating Places Where Elders Can Age with Dignity and Purpose" (2021)

  •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First Ibasho Project in Singapore Launches"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