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6년 시카고 회의에서 숲의 파괴와 침팬지의 고통을 목격한 후, 그녀는 과학자에서 운동가로 변모했다. 이후 평생을 1년에 300일 이상 강연 투어에 할애하며 환경 운동에 헌신했다.
1977년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했고, 1991년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을 창립하여 현재 전 세계 75개국으로 확산시켰다. 2002년 UN 평화의 메신저로 임명되었고, 2025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길 위에 있었다. 희망을 말하고, 행동을 촉구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설파했던 우리 시대의 위대한 현자였다.
Q1. 박사님, 지난달 박사님의 부고를 듣고 전 세계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숲으로 들어가는 순간, 두렵지는 않으셨는지요.
죽음은 두려운 끝이 아닙니다. 저는 늘 죽음을 '다음번의 거대한 모험(The next great adventure)'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숲에서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을 지켜보면서, 저는 제 육체가 사라져도 제 영혼과 에너지는 우주의 일부로 남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그리우신가요? 슬퍼하지 마세요. 숲의 나무들 속에, 침팬지의 눈망울 속에, 그리고 환경을 지키려 애쓰는 여러분의 손길 속에 저는 여전히 살아있을 테니까요.
Q2. 1960년으로 시계를 되돌려보겠습니다. 스물여섯 살, 아무런 학위도 없이 아프리카 곰비의 숲으로 들어갔을 때, 그 고독과 막막함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침팬지들은 저를 '하얀 피부의 유인원' 정도로 여기고 피해 다녔으니까요.
저는 그저 숲의 일부가 되기로 했습니다. 칙칙한 색의 옷을 입고, 나뭇잎 밟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기어 다니며 몇 달을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붉은 팜유 열매를 쥐고 있던 제게 한 침팬지가 다가왔습니다. 제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David Greybeard)'라고 이름 붙인 그 친구였죠. 그가 제 손의 열매를 집어가고, 안심하라는 듯 제 손을 살짝 쥐어주었을 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어 없이 소통했습니다. 관계란 제가 원할 때 맺어지는 게 아닙니다. 상대가 마음을 열 때까지 묵묵히 곁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자연이 제게 가르쳐준 첫 번째 예의였습니다.
Q3. 당시 과학계는 박사님의 연구 방식을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동물에게 번호가 아닌 이름을 붙이고, 그들에게 '성격'과 '마음'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죠.
맞아요.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님들은 "제인, 너는 모든 걸 틀리게 하고 있어"라고 꾸짖었습니다. 당시 과학은 '감정 이입'을 객관성을 해치는 죄악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곰비의 숲에서 침팬지 '플로(Flo)'가 죽었을 때, 그녀의 아들 '플린트(Flint)'가 식음을 전폐하고 어미의 시신 곁을 지키다 우울증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슬픔은 인간의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지성만으로는 진실의 반쪽밖에 볼 수 없습니다. 사랑과 공감이 동반될 때, 우리는 비로소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게 됩니다. 저는 '냉철한 과학자'보다 '따뜻한 이웃'으로 남기를 택했고, 결국 그 선택이 옳았음을 세상이 알게 되었습니다.
Q4. 1986년 시카고 회의는 박사님의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었습니다. 사랑하던 숲을 떠나 1년 중 300일을 길 위에서 보내는 고단한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회의장에서 저는 숲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실험실의 좁은 철장 속에서 제 친구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참혹한 진실을 마주했습니다.
저는 과학자로 그곳에 들어갔지만, 운동가(Activist)가 되어 나왔습니다. 숲에 앉아 기록만 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으니까요.
많은 사람이 묻더군요. "나이 아흔에 왜 쉬지 않느냐"고요. 제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아이들의 미래가 도둑맞고 있는데, 다리가 움직이는 한 멈출 수 없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제게는 투쟁이었고, 동시에 기쁨이었습니다.
Q5. 박사님은 숲에서 평화를 찾으셨습니다. 환경과 인간의 내면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환경 파괴는 단순히 밖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공허함과도 연결되어 있지요.
사람들은 불안하면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파괴합니다. 하지만 숲에 들어가 나무의 숨소리를 듣고,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새들의 노래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평화를 얻습니다.
자연은 우리의 치유자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치유의 원천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저는 곰비의 숲에서 침묵과 고독을 배웠고, 그 속에서 제 내면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회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기억할 때 시작됩니다.
Q6. 박사님은 늘 '희망'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기후 위기와 전쟁으로 세상은 어둡습니다.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물론입니다. 제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네 가지 확실한 증거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두뇌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들었지만, 그것을 해결할 놀라운 기술과 지혜도 가졌습니다.
둘째, 자연의 회복력입니다. 황폐했던 곰비의 언덕이 다시 숲으로 돌아오는 기적을 저는 보았습니다.
셋째, 불굴의 인간 정신(Indomitable Human Spirit)입니다. 전쟁과 장애, 가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젊은이들의 에너지입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제 육신은 떠나지만, 이 네 가지 희망의 기둥은 건재합니다. 그러니 제발, 포기하지 마십시오.
Q7. 박사님이 만드신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 운동이 전 세계 75개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남겨진 우리,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뿌리'는 튼튼한 지반을 만들고, '새싹'은 작아 보이지만 콘크리트 벽을 뚫고 태양을 향해 나아갑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바로 그 새싹입니다.
저는 이제 짐을 내려놓지만, 제 꿈은 여러분의 손에서 계속 자라날 것입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물어보세요. "오늘 나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여러분의 작은 실천이 모여 거대한 변화를 만듭니다.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속에, 저는 언제나 여러분을 응원하며 서 있을 것입니다.
출처
- Jane Goodall (1971, 1999, 2021), 《In the Shadow of Man》, 《Reason for Hope》, 《The Book of Hope》
- ABC News (2025.10.2), Jane Goodall, famed primatologist and conservationist, dies at 91
- Newsweek (2025.10.2), Conservationist Jane Goodall Dead at 91
- The Jane Goodall Institute 공식 발표 (2025.10.1)
글 브레스저널 편집팀
📌 편집자 주
이 글은 실제 대담이 아닌, 제인 구달의 생애와 저서, 그리고 생전 강연을 토대로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브레스저널은 그녀가 남긴 목소리를 오늘의 언어로 불러내어 묻습니다. 한 세기를 살아내며 숲과 침팬지를 지켰던 그녀의 희망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오는가?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또다시 같은 위기를 반복하지 않을까?
🤝 제인 구달의 유산을 이어가는 법
제인 구달 박사님은 떠나셨지만, 그녀가 뿌린 씨앗은 여전히 우리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그녀의 삶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동'입니다.
뿌리와 새싹 (Roots & Shoots)
전 세계 청소년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환경 실천 네트워크입니다. 당신의 지역에서 변화를 시작하세요.
👉 글로벌 공식 홈페이지 rootsandshoots.global
제인 구달 연구소 (The Jane Goodall Institute)
침팬지 서식지 보호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연구소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 연구소 후원 및 참여 janegoodall.global
브레스저널 챌린지
이번 주, 하루 한 끼 채식하기로 제인 구달 박사님을 추모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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