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4일, 경북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에 국가배터리순환클러스터가 문을 열었다. 489억원이 투입된 이 시설은 단순한 재활용 센터를 넘어, 폐배터리를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순환경제의 핵심 거점이다.
전기차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급증하는 폐배터리 문제에 대한 해법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폐배터리 배출량은 2025년 약 3만 2천개, 2029년에는 8만개에 달할 전망이다. 이러한 폐배터리는 방치할 경우 토양오염과 화재 위험을 일으키지만, 적절한 기술로 처리하면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광물을 95% 이상 회수할 수 있는 보물창고가 된다.
위기를 기회로, 폐기물이 자원으로
이번에 개소한 국가배터리순환클러스터는 1만 7천㎡ 규모로, 사용후 배터리 성능평가부터 블랙매스 제조, 유가금속 추출까지 전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실증연구 장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현재 80% 수준인 리튬 회수율을 95% 이상으로, 순도를 99%에서 99.5%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김고응 기후에너지환경부 자원순환국장은 "배터리 순환이용은 안정적인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를 위한 미래 전략 산업"이라며, "국가배터리순환클러스터를 통해 기업의 수요에 맞는 기술적,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는 '재생원료 생산인증제'가 시범 운영된다. 배터리 생산에 사용되는 니켈, 코발트 등이 사용후 배터리에서 회수된 것임을 인증하는 이 제도는 순환경제 활성화의 중요한 기반이 될 전망이다.
순환경제가 만드는 환경적·경제적 가치
폐배터리 재활용은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해법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2030년 60조원, 2040년 20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동시에 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어,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기여한다.
특히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광물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폐배터리 재활용이 자원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독일 재활용 전문기업 뒤젠펠트는 이미 리튬이온 배터리의 96%를 재활용하는 데 성공했으며, 국내 기업들도 SK에코플랜트가 니켈과 코발트를 97% 회수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포항, 배터리 순환경제의 중심지로
이강덕 포항시장은 "국가배터리순환클러스터 개소는 포항이 대한민국 배터리 순환경제의 전초기지로 거듭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기업·대학·연구기관과 상생하는 순환경제 생태계를 구축해 K-배터리 자원순환산업의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이미 구축된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 전기차 배터리 인라인 자동평가센터와 연계해 재사용·재활용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자원순환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오는 12월에는 사용후 배터리 인라인 자동평가센터가 추가로 개소해 하루 처리 능력이 1대에서 150대로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
미래를 위한 선택, 순환경제
전기차가 친환경의 대안으로 주목받지만, 폐배터리 처리 문제는 또 다른 환경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배터리순환클러스터의 개소는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폐배터리를 매립하거나 소각하는 대신, 첨단 기술로 핵심광물을 회수하고 새로운 배터리 생산에 활용하는 순환 시스템. 이는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는 지금, 포항에서 시작된 배터리 순환경제의 실험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폐기물이 자원으로 거듭나는 이 여정은 우리가 꿈꾸는 순환경제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