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한 나라의 땅과 사람을 파괴할 때, 어떤 이들은 그 땅에 생명을 되돌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남부 타루티노 스텝에서 리와일딩 우크라이나 팀은 2025년 10월 7일 다마사슴 7마리 무리를 야생으로 방사했다.
이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계속된 생태 복원 프로젝트의 결실이자, 파괴 속에서도 지속하는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리와일딩, 자연 스스로 치유하게 하다
타루티노 스텝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리와일딩(Rewilding)'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리와일딩 또는 재야생화는 생태계의 자생력에 초점을 맞춘 생태계 보존 전략이다. 인공 구조물을 해체하거나 오염된 부지를 회복시키는 등 자연이 스스로 자생력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1990년대 미국의 환경단체 어스 퍼스트 대표 데이브 포어맨과 보건생물학자 마이클 사울이 처음 개념을 제시했으며, 현재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리와일딩 워킹그룹에서 재야생화의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며 제도화하고 있다.
기존 자연 보호가 이상적인 형태를 유지한 장소를 골라 울타리를 두르는 방식이었다면, 리와일딩은 훼손된 지역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주로 대형 포유류를 데려다 놓고, 동물과 그 지역 생태계에게 후일을 맡긴 채 경과를 지켜본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늑대를 재도입한 프로젝트다. 늑대의 복귀는 엘크 개체 수를 조절했고, 이는 식물 다양성 회복으로 이어져 비버와 독수리 같은 다른 동물들까지 돌아오는 생태계 전체의 회복을 불러왔다.
2025년 10월 13일, IUCN은 포괄적인 리와일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는 전 세계 리와일딩 운동의 주요 이정표로, 자연 회복을 가속화하고 건강하고 자생적인 생태계를 복원하는 명확한 로드맵을 제공한다.
네덜란드에서 우크라이나를 잇는 네트워크
타루티노 스텝 프로젝트를 이끄는 것은 '리와일딩 우크라이나'다. 리와일딩 우크라이나는 자연 경관 복원, 야생동물 복귀,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 개발을 촉진하는 비정부기구로, 6년 이상 타루티노 스텝을 복원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리와일딩 유럽'이다. 리와일딩 유럽은 2011년 6월 28일 네덜란드에 설립된 독립적인 비영리 재단으로, 12개 유럽 국가에 걸쳐 10개의 재야생화 구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럽 리와일딩 네트워크(ERN)를 통해 유럽 전역의 재야생화 이니셔티브를 한데 모아, 각 네트워크 구성원에게 정보와 도구를 제공한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자 리와일딩 우크라이나 사무총장 미하일로 네스테렌코는 고향 오데사가 공격받자 가족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떠나야 했다.
그와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카티야 쿠라키나는 현재 네덜란드 네이메헌에 있는 리와일딩 유럽 본부에 머물며 원격으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25년간 다뉴브 삼각주 복원에 헌신해온 네스테렌코는 2017년 리와일딩 우크라이나를 설립한 후 쿨란(야생 당나귀), 물소, 코닉 말, 다마사슴, 수리부엉이 같은 핵심종을 재도입해왔다.

작은 생명이 만드는 큰 순환
타루티노 스텝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남아 있는 마지막 야생 초원 중 하나다. 6,176헥타르 규모의 이 지역은 소련 시대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되면서 역설적으로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보존됐다.
2016년 불법 경작으로 약 1,300헥타르가 훼손됐지만, 국내외 캠페인으로 파괴가 중단됐고, 이후 자연 복원과 함께 리와일딩 프로젝트가 본격화됐다.
2020년부터 시작된 재도입 프로그램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2022년과 2023년에 이어 2024년 9월 세 번째로 유럽 햄스터 13마리가 타루티노 스텝에 방사됐다. 반려동물로 키우는 햄스터와 달리 야생 유럽 햄스터는 몸길이 30cm, 체중 500g이 넘는 대형 설치류다.
햄스터의 굴은 다른 야생동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고 토양 비옥도를 높이며, 씨앗을 퍼뜨려 생태계 복원에 기여한다. 이들은 '생태계 엔지니어'로 불린다. 작은 몸집이지만 생태계 전체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24년 11월에는 유럽 다마사슴 20마리와 붉은사슴 5마리가 타루티노 스텝에 방사됐다. 사슴들은 1년간 순응 구역에서 적응 기간을 거쳐 2025년 가을에 완전히 야생으로 풀려날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10월 7일, 다마사슴 7마리가 타루티노 스텝의 야생으로 방사됐다. 이들의 자연 방목은 관목의 침입을 억제하고 산불을 예방하며, 스텝의 식물과 동물 종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든다.
전선에서 멀리, 그러나 안전하지 않은
다뉴브 삼각주 재야생화 경관은 주요 전투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야생동물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쟁의 그림자는 이곳에도 드리웠다.
흑해에 배치된 기뢰 여러 개가 조류에 밀려 삼각주 하구로 떠내려왔고, 일부는 재야생화 구역에서 폭발해 건조한 삼림지대에 화재를 일으켰다.
에코투어리즘은 하루아침에 중단됐다. 야생동물 사육자들은 기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동물을 판매하려 하지 않았다.
네스테렌코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우리와 파트너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팀원들은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현장을 방문하고, 댐과 제방을 제거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공동체가 선택한 미래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힘은 지역 공동체에서 나온다. 2024년 리와일딩 우크라이나 팀이 보로디노 지역 주민 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적 태도 조사에서, 주민들은 재야생화 프로젝트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스텝이 더 야생적으로 변하면서 방문객이 늘어나고, 보로디노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 자연 기반 관광은 새로운 수입원이 됐고, 주민들은 야생동물의 복귀를 환영했다.
2023년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 보로디노 지역 공동체와 볼흐라드 구청, 우크라이나 환경보호부, 과학 및 시민단체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부자크 스텝 국립자연공원 설립을 위한 다음 단계를 논의했다.
공원이 지정되면 9,700헥타르의 스텝 경관이 최고 수준의 보호를 받게 되며, 쿨란과 소형 포유류의 복원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
공원 조성은 보로디노와 인근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자연 기반 관광을 발전시키며, 방목과 건초 베기에 기반한 전통적인 농업 형태를 지원할 것이다.
2025년 6월에는 부자크 마을 의회, 아스카니아-노바 생물권 보전지역, 리와일딩 우크라이나가 3자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스텝 생물다양성 복원 센터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센터는 희귀 동물, 조류, 파충류 보존의 거점이 될 예정이다.
전쟁이 끝난 뒤를 위하여
조류 전문가들은 3년 연속 타루티노 스텝의 조류 개체군을 모니터링하며, 황금독수리, 검독수리, 쇠부엉이, 검은황새 등 희귀종의 존재를 확인했다. 2024년은 도전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자연 복원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계였다.
2022년 초, 타루티노 스텝에 방사된 쿨란 무리에서 새끼가 태어났다. 이는 200년 만에 유럽에서 야생 쿨란이 태어난 첫 사례였다. 생명은 전쟁 속에서도 계속됐다.
네스테렌코는 전쟁이 끝난 후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재건될지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다뉴브 삼각주에서 우리의 리와일딩 노력이 보여주듯, 우크라이나의 자연은 우크라이나 사람들만큼이나 회복력이 강하며, 둘은 서로 의존한다. 전쟁이 끝나면 둘 다 회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장기적으로 타루티노 스텝의 보존과 복원은 전쟁으로 파괴된 다른 스텝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자연 자원을 제공할 것이다. 전쟁으로 상처 입은 땅에서 다시 싹트는 생명은, 파괴 속에서도 지속하는 삶의 의지를 증명한다.
2025년 10월, 타루티노 스텝을 자유롭게 누비기 시작한 다마사슴들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뒤를 준비하는 씨앗이자, 인간의 존엄과 자연의 회복이 함께 갈 수 있다는 증거다.
출처
Rewilding Europe (2025), "The Rewilding Ukraine team have just released a herd of seven fallow deer into the wild on the Tarutino Steppe"
Rewilding Danube Delta (2024), "Danube Delta: Rewilding highlights 2024"
Endangered Landscapes & Seascapes Programme (2024), "Social study discovers overwhelming support for rewilding the Tarutino Steppe in Ukraine"
Rewilding Europe (2022, 2023, 2025), "Rewilding in Ukraine: uplifting progress in the face of adversity"
Rewilding Magazine (2024), "Fighting for Wildlife in a Time of War"
IUCN (2025), "New IUCN rewilding guidelines"
본 기사는 2025년 10월 중순 기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기획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