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종묘는 조선왕조 500년의 정신을 간직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는 조선 왕실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자산이다.
그러나 최근 종묘 인근 세운상가 재정비 사업을 둘러싸고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노후화된 세운상가는 화재 위험과 기능 저하로 재개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초고층 건물 건설이 종묘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개발과 보존은 병행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종묘 재개발 추진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종묘 경관 보존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도시계획이 문화유산 보호를 위협한다고 지적한다.
유네스코의 경고, 2026년 7월 보존상태 심사 착수
2025년 11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종묘 앞 개발 문제와 관련해 2026년 7월 보존상태 심사 검토에 착수했다. 이는 세계문화유산 취소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상황이다.
실제로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계곡은 경관을 가로지르는 교량 건설로 인해 2009년 세계유산 지위를 상실했다. 종묘 개발 논란 역시 이와 유사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종묘가 단순한 한국의 문화재가 아닌, 전 인류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세계유산임을 강조한다. 세계문화유산 취소는 국가 이미지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종묘 재정비 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에는 유산영향평가 제도의 미비함이 자리한다. 서울시는 국가유산청이 스스로 평가 요건 미비를 인정했다며 제도적 공백을 지적했다. 유산영향평가는 개발 사업이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는 제도로, 문화유산 보호의 핵심 장치다.
국가유산청은 투명하고 객관적인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여 개발과 보존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서울시 역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종묘 보존상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양 기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상인들의 목소리, 안전과 생존 사이의 갈등
2025년 11월 14일 현장 취재에 따르면, 세운상가 상인들은 돈 몇 푼 주고 내보내려 한다는 불안감과 화재 위험이 심각해 재개발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노후한 환경 속에서 안전 문제에 시달리면서도, 정비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현실적인 문제다. 재개발을 통해 현대적 편의성과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종묘와 조화를 이루는 건축 디자인·적절한 높이 규제·역사적 맥락을 존중하는 도시재생 방식이 필요하다.
종묘직계후손 이준 황손은 종묘를 정치권에서 정쟁에 이용하지 말라고 호소하며 우리 한국인들의 조상을 모신 사당임을 강조했다. 종묘는 특정 집단의 소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뿌리이자 정체성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종묘 세계유산과 세운상가 재정비 논란은 단순한 부동산 개발 이슈를 넘어선다. 서울시는 종묘 경관 보존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도 도시 기능 개선이라는 현실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는 파괴적 개발이 아닌, 창조적 재생의 접근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2026년 7월 유네스코 보존상태 심사를 앞두고,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구체적이고 혁신적인 해결책이 요구된다. 종묘가 박제된 과거가 아닌, 살아있는 전통으로서 현대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줄 때, 문화유산 보호와 도시 발전의 상생 모델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