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지금 ‘리디자인’인가
명절 의례의 실천 방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9월 1~5일 조사에서 “차례상을 준비한다”는 가구 비중이 2016년 74.4%에서 2025년 40.4%로 낮아졌고, 준비하더라도 간소화가 다수라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차례 본래의 의미를 지키되, 과도한 품목과 절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일상 감수성이 이동했음을 보여줍니다.
환경 측면의 동시 변화도 크습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은 추석 연휴 이후 급증하는 포장재·음식물 배출을 줄이기 위해 10월 1~14일 ‘쓱 차리고 싹 비우기’ 캠페인을 운영하며, 지자체와 수거·배출 지침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명절을 더 깨끗하게 보낼 수 있도록 생활폐기물 관리대책도 오늘(9월 24일) 추가 발표됐습니다.
이동 구조 역시 소비와 배출에 영향을 줍니다. 정부는 올해 10월 4~7일 전국 도공·민자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기로 했고, 10월 3일에 진입해 4일에 나가거나 7일에 진입해 8일에 나가도 면제를 적용합니다. 대이동이 촉발되는 만큼 불필요한 왕복과 과대 포장을 줄이는 생활 전략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전통의 뜻은 줄이지 않고, 형식만 가볍게 차례상은 원래 정성과 기억의 매개였습니다. 올해 소비 행태를 보면 ‘국산 과일 중심(배·사과·단감·포도) 유지’라는 축은 남긴 채, 품목 수와 양을 줄이는 간소화가 보편화했습니다. 동시에 수입 과일의 선택 폭이 넓어지며 실용적 구성이 늘었습니다. 핵심은 ‘무엇을 얼마나 올리느냐’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감사와 기억을 실제 언어로 나누는 시간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비용은 낮추되, 마음의 밀도는 높이기
전통시장 기준 4인 가족 차례 비용은 29만9,900원으로 4년 만에 20만 원대로 내려왔습니다. 대형마트 비용도 소폭 하락했습니다. 그러나 비용 절감만으로 갈등은 줄지 않습니다. 예산 상한을 먼저 합의하고, 가족별로 가장 지키고 싶은 의례 요소(짧은 감사문·헌화·간단한 절식 등)를 정한 뒤, 그 의미를 뒷받침하는 최소 구성을 확정하는 순서가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하면 남김과 배출이 줄고, 예산과 감정 모두 가벼워집니다.
상차림은 가족 규모와 식습관을 기준으로 소량·단품 중심으로 구성합니다. 대표 과일 두 종과 제철 채소, 간단한 주식이나 탕 한 가지로도 충분합니다. 남을 것을 전제로 한 대량 조리는 가급적 피하고, 남은 음식은 당일 냉장·냉동을 분리해 보관합니다.
선물은 리필형·벌크 제품을 재사용 용기와 묶고, 택배 박스는 테이프 제거 후 배출하며 오염된 스티로폼은 일반폐기로 전환합니다. 식단에서는 알레르기·채식을 고려해 식물성 대체 메뉴 한 가지를 포함시키면 모두가 편히 식탁에 앉을 수 있습니다. 의례의 중심은 목록이 아니라 말입니다.
상차림을 앞세우기보다 3분 내외의 감사문을 공유하고, 아이들과 가족사 한 줄을 나누면 전통의 맥락이 자연스레 살아납니다. 이동 계획은 통행료 면제 정보를 활용하되, 불필요한 왕복을 줄이고 동승·경로 합리화로 탄소 부담을 낮춥니다. 명절 직후에는 수거 휴무를 확인하고, 세척–건조–배출의 순서를 가족별로 분담하면 혼란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전통은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이어지는 ‘호흡’에 가깝습니다. 덜 차리고 더 나누는 상차림, 덜 버리고 더 기억하는 의례가 2025년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지속가능성입니다.